장흥 평장리 금안마을 ‘각왜비’ 도 문화재 지정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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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평장리 금안마을 ‘각왜비’ 도 문화재 지정 ‘예정’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8.04.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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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 지정 예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거쳐 최종 확정

정유란 때 의병 모아 장흥을 지킨 오우당 김응원 선생

▲ 각왜비

지난해 5월 장강신문에 소개됐던 장흥읍 평장리 금안마을에 서있는 각왜비가 지난 13일 전라남도문화재위원회 1차심의에서 지정통과됐다.

이에 따라 특별한 이의신청 없이 30일이 경과되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각왜비의 주인공은 김응원(金應遠, 본관:경주, 아호:五友堂) 선생이다.

김응원 선생은 선조 2년(1569) 경주후인 평사교리 김희련(호 石靑)과 숙인 청주 한씨와의 사이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장흥읍 금(김)안리에서 태어났다.

강진군과 장흥군 경계에 위치한 각왜비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적의 침탈로부터 고향을 지키기 위해 활약한 김응원 선생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장흥군 문화재 5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안내판의 글씨도 흐릿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별도의 보호나 관리를 위한 조치가 없어왔다.

또한 ‘각왜동’ 암각자가 있는 골짜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크고 작은 나무들로 우거져 흔적을 찾아내기조차 힘들 정도가 되어 있다.

▲ 각왜동

김응원 선생은 정유재란 당시 맏형인 훈련판관 김응규와 함께 의병 수천을 모아 탐진강하구에서 올라오는 왜적들을 도고동 골짜기 일대에서 낮에는 수많은 허수아비 병졸을 세워두고 밤에는 수백 수천의 횃불을 켜 혼비백산하게 해 물리쳤다.

이후 승전의 공을 기리기 위해 현(縣」의 관리가 도고동 골짜기 바위에 그 마을을 표(表))하기를 ‘각왜동(却倭洞)’라 하였다. 김응원 선생은 고향에서 인조16년(1638)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응원 선생과 도고동 의병을 기리기 위해 1881년(고종 18) 「유명조선국성균생원참봉경주김공각왜비」라고 김응원 선생의 7대손인 김원주씨가 김응원 선생의 행적과 활약 내용을 비문으로 새겼다.

각왜비는 정면 측면 각 1칸의 비각 안에 있으며 토담으로 둘러 쌓여 있고, 비신 높이는 125cm, 너비는 44cm이며 비갓을 갖추고 있다. 전면에는 <有明朝鮮國成均生員參奉慶州金公却倭碑>라 음각으로 새겨 있고 후면과 옆면에 비문이 있다.

이러한 내용의 각왜비 건립(1823년)에 앞서 조선 정조임금에게 올린 ‘만언봉사’로 유명한 존재 위백규 선생의 부친인 영이재 위문덕(1704-1784년)선생이 기록한 ‘영이재문집’에 김응원 선생에 대한 행장이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호남절의록>에도 올라 있다. 정유재란의 역사성을 알 수 있는 기록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되면 전남도는 문화재의 현상, 관리, 수리 그 밖의 환경보전상황 등에 대하여 5년마다 정기적으로 기록 조사하며 그 결과를 문화재의 지정해제, 수리, 복구, 보전, 시설 설치 등 관리에 반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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