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동짓날 이 생각 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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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동짓날 이 생각 저 생각
  • 장강뉴스
  • 승인 2017.12.2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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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성균관 전인
▲ 최일중 성균관 전인

일년은 24절기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이렇게 양력으로 2절기씩 되어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잘 알려진 황진이의 시조다. 대담하고 멋드러진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동짓날 밤이 긴 것이 자연현상이지만 마음의 조화이기도 하다. 임 생각이 간절하면 그럴 수 밖에.
동짓날 이야기는 아니지만 민요 ‘육자배기’의 사설중에 이를 실토하는 것이 있다. 추야장 밤도 길더라. 남도 이리 밤이 긴가. 밤이야 길까만은 남이 없는 탓이로구나. 언제나 알뜰한 님을 만나서 긴 밤 짜루워 볼거나?
동지(冬至) 날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겨울 추위에 짝이 없이 옆구리가 시린 이들에게 오늘 밤은 더욱 길 것이다. 이제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날이 길어 질테니 한숨만 쉴 게 아니라 긴 밤이 언제 가는지 잊게 해줄 알뜰한 님을 찾아 볼 일이다.
청승은 늘어가고 오그라진다고 홀로 동지팥죽 먹는 신세 한탄에 청승떨어 봤자 오그라든다.
동지는 사실 새 날의 시작이다. 몇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해 축제를 벌이고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대중국의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았다. 우리 조상들이 이 날을 작은 설로 부르며 기쁘게 맞은 것도 생명과 빛이 돌아와 새로 열리는 시간의 기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동지를 설과 함께 으뜸가는 명절로 여긴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잔치를 베풀었다.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축하했다.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에 국립천문기관인 관상감에서는 새해 달력을 만들어 올렸는데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임금의 도장을 찍어서 관원들에게 나눠줬다. 동문지보는 중용(中庸)에 나온다.
이제 천하의 수레가 동일한 궤도를 가며 글이 같은 문장을 쓰며 행동에 윤리가 같다라는 어구에서 딴 것이다. 천하가 통일되어 태평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동지는 동짓달 음력 11월중에도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로 구별한다. 올해는 애동지라 하나다.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고 했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마음 든다는 속담도 있다. 겨울 추위에 움츠리고 있던 푸성귀들조차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고 무척이나 더웠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동짓날 지나고 섣달도 지나면 새해다. 밤이 낮에 자리를 내주면서 음의 기운이 약해지고 양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는 동짓날 오늘 하루만큼은 밤을 새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맞을 채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온갖 소란과 갈등과 눈물과 분노에 시달렸던 고단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동문지보의 새 날을 기약하고 싶은 밤이다. 눈이 오면 더욱 좋겠다. 동지에 춥고 눈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든다고 했으니.
그리고 동짓날은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하여 부적으로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였다고 한다. 유자(柚子)를 진상에 전복, 대구어를 진상하기도 하고 새알죽을 쒀서 집안팎에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뿌리고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11월의 음식은 냉면, 동치미, 장김치를 먹었다고 한다. 아 11월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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