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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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89
  • 장강뉴스
  • 승인 2025.02.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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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 자화상

고희(古稀)의 강을 건넌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머나먼 우주에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인 
비취(翡翠) 같은 
지구별에 여전히 신세를 지고 있다  

우주의 사관(史官)임을 자처하는
지구별은 
우주의 은하계 중 
태양계의 여덟 개 행성 중 
세 번째 행성인데 
나는 운이 좋게도
꽃 피고 새가 울고 시냇물이 노래하는 
지구별에 얼굴 내밀었다     
 
지구별은 
오대양인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와 
육대주인 
아시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가 의기투합하고 있고  
나는
오장인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과 
육부(六腑)인 
위(胃), 소장(小腸), 대장(大腸), 담(膽), 방광(膀胱), 삼초(三焦)가  
의기투합하고 있다 

지금 자화상이라는 시를 쓰느라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둥지를 튼 
별뫼로 342-5, 000동 000호는 
성전면에 
성전면은 강진군에
강진군은 전라남도에 
전라남도는 대한민국에 
대한민국은 아시아에  
아시아는 육대주에 
육대주는 지구별에 
지구별은 태양계에
태양계는 우리은하에
우리은하는 우주에  
우주는……

말문이 막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나의 지나간 미래에 대하여 
털어놓고 
나의 다가올 과거에 대하여 
포부를 밝히는 건데  
털어놓을 
포부를 밝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고희의 강을 건너 뒤에도   
두 집 내고 살려고 바동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털어놓을 수 있는 건 
두 집 내고 살려고 바동거리는 가운데도    
시를 붙들고 늘어져   
작시치(作詩痴)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시 때문에 
이제까지   
두 집 내고 살려고 바동거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도 
시를 내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은 지옥이기도 하고  
타인은 천국이기도 한 걸 
모를 리 없는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우리민족이 다시는 동족상잔의 길을 걷지 않는 데
우리민족이 분단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시이고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건 
부은 발등과 
부은 뒤통수다  
 
부은 발등과
부은 뒤통수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나는  
머나먼 우주에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인 
비취 같은 
지구별에 신세를 질 것이다,
앞으로도   

김재석 시인
김재석 시인

 

약력:1955년 전남 강진 출생. 1990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까마귀』 외 다수.
현 계간문예지 《물과별》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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