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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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 장강뉴스
  • 승인 2022.02.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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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긍(세명대학교 명예교수, 전 고전문학회 회장)

21세기 이 첨단정보화 시대에 최근 무속(巫俗)과 관련된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권순긍
권순긍

야당 대통령 후보가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공개 토론회에 나오고, 그 배우자와 친분이 있는 무슨 도사(道士)라는 사람이 선거 캠프에서 요직을 맡고, 도사의 신기(神氣)에 의지해 일정을 짜는 등, 상식이나 합리적인 이성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속과 정치

‘제정일치’ 시대였던 고대국가에서는 무당(巫堂)이 곧 군장(君長)의 역할을 맡았다. 농경과 관련된 기상의 변화나 전쟁 등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들을 누군가 올바르게 판단해주어야 하고 그 역할을 집단의 우두머리인 무당이 담당했다.

해서 이능화(李能和, 1869~1943)는 『조선무속고』에서 우리나라의 무속은 단군(檀君)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지 않는 유학(儒學)이 정치이념으로 정착하면서 무속은 이단시 되었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을 때 장희빈이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神堂)을 차려놓고 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에 숙종은 희빈 장씨를 자진하도록 하고, 그 일에 관련된 궁녀와 무녀도 모두 죽였다.

구한말에도 민비의 세도를 업고 국정을 농락한 정체불명의 ‘진령군(眞靈君)’이란 무녀가 있었다. 무녀는 장호원까지 피신했던 민비에게 점을 쳐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을 알려주었고, 거짓말처럼 그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 일로 실세였던 민비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유일무이하게 진령군이란 군호까지 내려졌다. 궁궐에서는 굿판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권세와 돈이 따라 매관매직에도 깊이 관여했다.

허약한 세자(순종)의 병을 고친다고 굿판을 벌여 금강산 봉우리마다 쌀 한 섬과 돈 천 냥, 무명 한 필씩 허비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국고가 탕진되었지만 민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령군의 신기만 믿었다.

맑은 정치를 만들기 위하여

다산(茶山)은 역저 『목민심서』에서 백성들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로 첫째는 도적, 둘째는 귀신붙이[鬼魅], 셋째는 호랑이를 들었다.

귀신붙이는 무속과 관련된 일로 귀신붙이가 변괴를 일으키는 것은 무당이 유도하기 때문이라 하여,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당을 베고 신당을 헐어버려야 요사한 것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무당들이 귀신을 빙자해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일을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나 귀신을 가탁(假託)하여 요사한 말로 민중들을 현혹시키는 자나 잡물(雜物)에 의탁하여 사특한 말로 백성들을 속이는 자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속은 실상 오랜 세월 민중들의 아픔과 한을 달래기도 했다. 종교가 이 땅에 정착되기 이전부터 무속은 민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위로의 역할을 담당했다.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거나, 사주(四柱)를 보아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새해 운세를 점치고, 혼일할 상대가 어떤지를 알아보고, 좋은 날을 택하여 일을 치루는 등 개인적인 일들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공적 영역으로, 혹은 정치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경우다. 지금이 제정일치 시대가 아닌 다음에는 국정이 주술에 의해 농단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고려말 신돈(辛旽)이나 구한말 진령군에 의해 국정이 농단된 경우를 보지 않았던가. 정치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이성에 의한 공론의 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다.

다산은 무당이나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자를 목민관(牧民官)이 처단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그 목민관을 뽑는 것이 국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맑은 정치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적어도 혹세무민의 ‘굿판’이 정치를 좌우하는 일은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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