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김진길 국가유공자 '월남전 참전용사'
상태바
장흥 김진길 국가유공자 '월남전 참전용사'
  • 김채종 기자
  • 승인 2019.08.26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유공자 김진길씨 집에 ‘국가유공자 명패’ 부착

광주지방보훈청 하유성 청장은 지난 14일 장흥에 거주하고 있는 김진길(80세) 국가유공자(월남전 참전)가정을 방문하여 ‘국가유공자 명패’를 부착했다.

▲ 김진길 국가유공자

국가유공자 김진길씨는 1970년도에 군에 일반병으로 입대(당시 7사단)하여 1년여 군복무후 당시 베트남 월남전에 지원하여 20개월간 사선을 넘나들었지만 다행히 다리부상(현재 파편이 박혀있음)만 당한 채 무사히 돌아왔다.

김 유공자는 “장흥에서 4남 3녀중 장남으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들이 많고 가난하여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삶의 도움을 주고자 자기 목숨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월남전 파병에 지원하게 됐다”고 당시 상항을 회고 했다.

김 유공자는 “월남전에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함께한 전우들이 적의 총탄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이 컸지만 오로지 부모님과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또 전우들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했다.

월남전 전투에서 첨병으로 임무수행 중 적 1개분대 규모가 은거하고 있는 진지를 발견하여 자신이 직접 적병 사살 및 생포하는 공을 세웠는데 당시 분대장(하사계급)이 훈장을 받게 돼 서운함을 내비쳤다.

김 유공자는 군 제대 후 해외(이라크, 쿠웨이트)파견 근로자로 나가 돈도 많이 벌었지만 지금은 혼자 살면서 개인회생 3년차 진행하고 있는 안타까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김 유공자는 군제대 후 결혼을 해서 아들 둘을 낳아 잘 길렀지만 장남은 중장비업을 하다가 중장비 수리 중 사고로 사망했고, 차남은 폭력사건에 휘말려 자살하는 불운을 맞이했다. 여기에 부인과도 이혼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엎친데 덮친다고 당시 지역 예비군 중대장이었던 최 모씨에게 1500만원 보증을 서 최씨가 갚지 못하자 대신 그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참담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다행히 10여 년 전에 전상군경 7급 국가유공자에 선정되어서 70여만원이 수당과 노령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 월남전 참전 당시 김진길 유공자

국가유공자 김진길씨와 호형호제하면서 지내고 있는 장흥발전협의회 백남선 회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희생한 국가유공자에 대해서 국가차원에서도 관리와 보호를 하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관리와 보호를 할 수 있는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 며 “이분들의 위국헌신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세밀한(월1회 가정방문, 보건관리, 법률상담 등)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