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던 상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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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던 상해 여행
  • 장강뉴스
  • 승인 2018.06.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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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스더(강진여중 2학년)
▲ 강에스더

우리는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중국 상하이에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지 외 중국 상하이의 관광지를 보러갔다. 사실 가기 전부터 우리나라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일정보다 윤봉길 의사의 홍구 공원,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홍구공원은 중국 상하이의 중심 부에 위치하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나라 독립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이곳에서 4월 29일에 1부 행사인 일제 침략군의 열병식을 하고, 2부 행사인 축하식이 시작됐다. 축하식 단상 위에는 일본 군부와 정계의 요인 7명이 모두 자리했다. 일본 국가의 마지막 소절을 부를 무렵,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을 중앙의 단상으로 던졌다. 그 폭탄은 정확히 중앙에 떨어져 폭발하였다. 폭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시라카와 대장, 카와바다 거류민 단장은 사망,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 시게미쓰 공사, 무라이 총영사 등등 다수가 죽거나 다쳤다.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일본 파견 일본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희생하셨다.

중국을 가기 전 역사책과 인터넷 자료 조사로만 보고 듣던 곳을 실제로 가보니 마음이 매우 쓰려왔다. ‘윤봉길 의사가 무엇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너무 화가 났다. 윤봉길 의사 외에도 많은 분들의 목숨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셨을 텐데 우리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깊게 바라보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이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끝나 버린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3·1운동이 실패한 이유가 우리 민족을 힘차게 이끌어 갈 정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3월경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국민 의회, 4월경 한성과 상해에 임시 정부가 각각 세워졌다. 하지만 임시 정부가 여러 곳에 나뉘어 세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임시정부를 하나로 묶었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쉬우면서도 외국 공사가 많아 우리의 독립을 외국에 쉽게 알릴 수 있는 곳인 상해에 9월경에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이승만을 첫 번째 대통령으로 선임하고, 주로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의 의지를 알려 나갔다. 또한 비밀 조직을 통해 국내의 독립운동 세력을 지원했다. 이렇듯 임시 정부는 독립운동의 커다란 등불과도 같았다.

평소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중국 상하이를 가게 되면서 사전조사를 하게 됐다. 사전조사를 하고 설명을 읽어보니 어떤 이유로 설립되었는지 잘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이제 임시 정부가 아닌 대한민국 땅에 정부가 있는데, 나는 우리나라 정부가 독립은 하였으니, 통일을 이끌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인 임시정부를 가보아서 매우 기분이 새로웠다.

이 두 곳에 공통점은 우리나라 독립의 상징이 된 곳이었다. 직접 가보니 기분이 매우 묘했다. 사실 역사를 배운다고 하지만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부분은 배울 시간이 없다. 후엔 배울지 몰라도 우리가 자주 생각하는 부분이 아니기에 많이 아쉽다. 중국도 갔다 오고, 또 우리나라 독립에 대해 더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니 우리가 역사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학년들도 우리가 갔던 코스들보다 더 많은 우리나라 역사가 있는 곳으로 갔으면 한다. 외국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간다면 우리나라 역사지가 많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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