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작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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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작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8
  • 장강뉴스
  • 승인 2025.04.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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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린시절

4

운현은 망태와 낫을 들고 고샅을 지나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으로는 천자문을 외우고 있었다. 한 글자가 생각나지 않아 장승처럼 서서 먼산바라기를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한 자 한 자 뱉어냈다. 강 바치려고 몇 번을 암기하여 머릿속에 저장했다. 외우다가 틀리면 강 받은 훈장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기 때문에 정신을 바싹 차려야 되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몇 번을 반취하며 갈무리했다. 소가 되새김질 한 것처럼 곱씹어댔다.

“덕기야, 학교가 벌써 파했냐?”

운현은 신작로로 나섰을 때에 학교에서 오는 덕기를 만났다. 가로수처럼 서서 부러운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응, 오늘은 오후에 수업이 없다고 해서 일찍 와. 너는 어디 가냐?”

덕기는 생글거리며 좋아했다. 소학교에 다닌다고 뻐겨대며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담임선생이 학교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여 일찍 집으로 돌려보냈다.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달려왔다. 망태를 들고 있는 운현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소 꼴 베려….”

운현은 소학교에 다니는 덕기를 보자 시샘이 났다. 학교에 다니고 싶은 충동과 부러움이 치밀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학교에 다니는 애들을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나고 질투하며 짜증을 냈다. 자신도 학교에 다니면 어느 누구보다 더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치밀어 올라 충동질을 해댔다.

“책보를 집에 두고 올 테니 나하고 함께 가자.”

덕기는 달려가며 말했다.

“빨리 와라. 한 망태 베어와 소죽을 쓰려면 시간이 없어.”

운현은 덕기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속이 뒤틀려 화풀이를 해댔다.

“너만 가면 안 된다.”

덕기는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소학교에 다니면 누구보다 더 공부를 잘할 수 있을 텐데….’

운현은 먼산바라기를 하며 군침을 삼켰다. 덤재가 있는 국사봉 위에는 잿빛구름이 지나 가고 있었다. 매 한 마리가 산봉우리 위에서 맴돌았다.

‘서당에서 천자문 외울 때마다 남에게 뒤쳐지는 적이 없는데….’

운현은 소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욕구를 억제하지 못했다. 다른 애들과 경쟁하면 이길 자신이 있었다. 식구가 많아 먹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서 부모님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꼴을 베어 소죽을 쒀야 돼.’

운현은 머슴살이하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다. 손등으로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방울을 쓱 문질렀다. 한참동안 넋을 잃고 장승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운현아 우리도 꼴을 베어야 돼. 함께 가자.”

숙형은 덕기와 함께 달려오며 소리쳤다.

“빨리 와라, 시간 없다.”

운현은 서쪽 하늘에 박혀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서둘러야 해동갑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꼴을 베어와 소죽을 쓰려면 어두워지기 전에 여물도 썰어야 했다. 학교에 다니려면 월사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라도 잘 길러야 되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소학교에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치를 보아서 학교에 다니겠다고 생떼를 쓸 속셈이었다. 억지를 부리면 어쩔 수 없이 승낙할지도 몰랐다.

5

“어머니, 나도 소학교에 다니면 안 돼?”

운현은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무렵 꼴을 한 망태 채워서 어깨에 메고 사립문을 들어섰다. 텃밭에서 김매는 어머니를 향해 투덜거렸다. 괜히 성질이 나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소학교에 다니지 못한 화풀이를 죄 없는 어머니에게 해댔다.

“소학교에 다니고 싶으냐?”

행동댁은 호미를 들고 일어났다. 허리를 펴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덕기는 소학교에 다니는 데….”

“너는 밤이면 서당에 다니면서.”

행동댁은 어린 아들이 꼴망태를 어깨에 메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애잔하게 느껴졌다. 자식이 고생하는 걸 보니 어미가 죄인이 되었다. 전부터 소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하였으나 흘려들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자식이 원하는 걸 해주지 못하니 속이 쓰리고 아팠다. 빚이라도 내서 보내고 싶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색갈이도 내지 못했다. 먹고 살아가는 것도 힘에 버거워 쩔쩔매고 있었다.

“덕기도 밤이면 서당에 나와요.”

“소학교에 가봐야 월사금만 축내지 배울 것이 없을 텐데….”

행동댁은 고개를 저어댔다. 문제는 학자금이었다. 집안 장손이니 아들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 꿀 같았다.

“서당은 한문이고 소학교에서는 새로운 신식교육을 시킨다고 하던데요.”

운현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라댔다. 꼴을 베면서 생떼거리를 하기로 작정했었다. 나이가 더 이상 많아지면 소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교육을 받는 것도 때가 있었다.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장 소학교에 입학한다하여도 다른 애들보다 한참 연상이었다.

“새로운 교육이라니?”

행동댁은 자식을 소학교에 보내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생활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동생들도 있었다. 식구는 많고 먹을거리가 없어 굶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 삶은 고구마 한 개로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았었다.

“학교에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신식교육이란 것이 있다고 하던데요.”

운현은 열을 올렸다. 상기되어 얼굴이 붉어졌다. 공부도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훈장님의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어서 가서 소죽이나 써라. 아버지가 들에서 돌아오면 이야기해보자.”

행동댁은 자식을 달래었다. 결정할 수 없어 핑계를 대었다.

“소를 잘 기를 테니 학교만 보내 주시요.”

운현은 망태를 들고 소가 있는 외양간으로 갔다.

“자식 앞길을 막을 어미가 있다던?”

행동댁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여물을 썰어야 하는데…?”

운현은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내가 도와주마.”

행동댁은 텃밭에서 나왔다. 소는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소여물을 썰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작두질하다가 잘못하면 손가락을 자를 수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에 서둘러 여물을 썰어야 되었다.

“소죽 쑤어 소에게 주고 저녁밥 먹고 서당에 가려면….”

운현은 투덜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천자문을 외우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훈장 앞에서 천자문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외어 바쳐야 되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한 자도 틀리면 안 되었다. 〈다음주 계속〉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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