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안녕
하늘과 헤어진 눈송이가 은총처럼 내리는데
너를 벗으면 세계가 지워질 것 같았지
손바닥을 보인다고 손바닥의 온도가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눈 내리는 날 겨우 나를 벗고
내 안의 미지로 들어가 본다
양말을 벗듯 얼굴을 벗을 수 있다면
안녕이라는 말이 물뿌리개와 헤어진 물방울 같을 거야
비자나무 가지 끝은 새 모양 같아
언젠가 문득 앉았다가 떠난 새를 몸에 새긴 거지
몸속에 새긴 새를 가지 끝마다 새기는 비자나무처럼
내 몸에 스민 네가 드러나려 할 때마다
점이 생기는 거 같아 투명한 마음이 인쇄한 얼굴에
먹물 한 방울 떨어진 것처럼
너는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아
이런 불치를 안고 가는 겨울
코끼리도 발톱을 깎아야 할까
코끼리 발바닥은 걸을 때마다 땅과 이별하고 그럴 때면
코끼리 발바닥에도 지구의 발자국이 찍힐 거야
네 마음이 커서 작은 마음의 나는
지구가 딛고 간 내 발바닥을 생각합니다
안녕이라는 말이 나를 떠날 때까지
눈물이 버린 내 몸을 오래 들여다보면
나는 눈물의 찌꺼기입니다
그러니 눈물의 활자로 기록된 책이 있다고
당신의 감정에서 출발하지 않을 때 봄이 시작된다고
어제와의 헤어짐이 오늘의 축복이듯
기쁨인 나여 안녕

저작권자 © 장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