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성탄
물 젖은 화장지처럼 구석에 눈이 쌓인다
육개장 뼈해장국 김치찌개 사이로 마른기침 같은 바람이 불고
다 울었다 싶었지만 남은 것이 있다 감출 것이 있다 옷깃을 여민다
미끄럽지 않아서 배반당한 것 같은 기분 위에
눈이 내리고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네게로 흐르는 마음을 잠그지 못하는 오늘은
속수무책 눈이 내리고 오늘은
고장 난 마음의 생일
까만 염소 등에 열리는 하얀 눈송이처럼
모래를 밟고 섰다가 까르르 쏟아내던 웃음처럼 우연처럼 축복처럼
산에는 눈이 쌓이고 산등에는 더 쌓이고
걸어다니는 산이 있다고
문득 산이 가까이 와서 음매하고 소리를 낼 때가 있다고
까만 염소의 순한 눈동자처럼 몸 비비는 마음이
오늘이라고
성탄이라고

저작권자 © 장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