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다시 始作한다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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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다시 始作한다는 정신
  • 장강뉴스
  • 승인 2018.01.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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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성균관 전인
▲ 최일중

무술년 또는 한해가 시작되었다. 이때면 누구나 한해의 운수대통을 기원한다. 그런데 열심히 기원하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계획도 도전도 없이 우연한 요행을 바라는 기원이란 본래 그렇다. 새해가 시작도리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냥 앉아서 행운을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소망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도 인내도 없이 운수대통을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불평하는 우리 모습이란 얼마나 왜소하고 민망한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어니스트 해밍웨이(1899~1961)는 한 노인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 노인은 고기를 잡지 못한 채 84일을 보냈다. 이렇게 시작하는 노인과 바다는 산타아고라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산타아고 노인은 작은 배를 타고 멕시코만에서 혼자서 고기를 잡는 어부다.

처음에는 노인과 함께 배를 타던 소년이 있었지만 고기를 못 잡고 허탕을 치는 날이 40일째가 되자 고기를 잘 잡는 다른 배로 옮겨갔다. 소년의 부모가 그렇게 한 것이다. 노인의 운이 완전히 바닥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년의 부모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노인에게 남은 것은 불운 중에서도 최악의 불운이라고 수근 됐다.

하지만 혼자 남은 노인은 자신의 작은 배를 가지고 고기잡이를 계속한다. 운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노인은 나이조차 많았다. 바다를 구석구석 잘 아는 경험과 노련함에도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살은 숨길 수 없다. 그럼에도 노인은 깊고 강력한 눈빛으로 고기 잡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보여준다. 84일간 허탕만 쳤다한들 그 다음날도 빈손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삶의 신비를 미리 아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노인은 누구보다도 낚시질을 정확히 드리울 수 있지 않은가. 고기 잡는 사람은 운수를 기다리는 것보다 낚시 줄을 제대로 드리워 놓는 게 우선이다.

노인은 84일을 허탕치고 묵묵히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5.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청새치를 낚는다. 바다에 나간 지 85일째 날이다. 그런데 고난은 이제 부터가 시작이다. 엄청난 무게를 가진 청새치와 한판승부를 벌여야 한다.

청새치는 노인이 3일간이나 끌고 다니다가 지쳐서야 자신의 생명을 내준다.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얻는 일은 마지막 순간이 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하지만 거대한 청새치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노인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상어 떼와 싸워야 한다. 노인은 상어와 사투를 벌이지만 청새치는 살점이 다 뜯겨나가고 앙상하고 거대한 하얀 등뼈와 꼬리만 남았다. 그러나 노인은 절망은커녕 실망조차 하지 않는다. 상어 때 같은 파괴자들이 어디 바다에만 있는가.

삶에는 느닷없이 덤벼는 상어 때가 늘 있기 마련이다. 노인과 바다는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과 헤밍웨이가 쓴 작품중에서 최고의 이야기로 꼽는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플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인과 바다는 한 노인이 힘들게 잡은 거대한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다. 사실 놀랍도록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다. 재미나는 갈등 관계도 화려한 수식어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일까.

노인은 바다위에서 목숨을 건 두 번의 싸움을 한다. 첫 상대는 청새치고 다음에는 상어다. 노인은 청새치를 잡기 위해서 바다에서 무려 84일 동안을 기다린다. 노인은 청새치를 잡기 위해서 준비한 것은 바로 이 길고 긴 기다림이다. 또한 굽히지 않는 의지와 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이다.

사람들의 수군거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노인은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마침내 평생 듣고 보지도 못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청새치와의 목숨 건 싸움을 통과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지만 다시 또 한 번의 싸움을 상어와 싸움을 치러야 한다. 이번에는 청새치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노인은 상어들과 싸워봤자 청새치 원래의 모습대신에 등뼈만 남는다는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청새치의 일부를 내주면서 일부를 챙기는 타협보다는 상어 떼와의 정면승부를 택한다. 그리고 노인은 말한다. “인간은 파멸 당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이 한마디에서 노인이 왜 그토록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였는가를 알게 된다. 비로소 노인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싸웠으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는지를 이해한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증명하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싸운 뒤에는 그 결과가 허망하거나 빈손이라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싸웠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늘 준비하고 기다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노인은 깊고 곤한 잠을 잔 후에 다시 바다로 나갈 것이다.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앉아서 거대한 청새치 같은 운수를 꿈꾸는 대신에 각자의 바다로 나가서 정확하게 낚시대를 드리우고 의지와 끈기를 가다듬는 것이 더 값진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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