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최일중(성균관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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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최일중(성균관 전인)
  • 장강뉴스
  • 승인 2017.04.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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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이 행복(幸福)을 만든다

▲ 최일중(성균관 전인)
만족감은 행복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신체적 건강, 물질적 풍요, 친구와 동료 등은 행복을 얻게 하는 세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 세가지 요소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판단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만족감이다.
우선 신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자신의 신체에 대해 집착이 너무 강하면 때로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수행에서는 신체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신체의 본질을 분석하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 신체의 원천과 피와 뼈와 살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한다. 신체는 순수한 것이 아니라 출산하는 행위도 피범벅이다. 또한 우리의 신체를 외관상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갈고 닦아도 신체의 내부에는 여전히 더러운 것들이 담겨 있다.
피부로 덮여 포장된 인간의 신체는 때로는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살펴보면 우리의 신체는 정말로 끔찍하다. 아무리 좋은 맛과 향기와 색상을 지닌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그 음식이 발효되어 더러운 찌꺼기로 변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더러운 것들을 우리 몸에서 완전히 제거한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내 자신의 신체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아프고 늙고 죽는 것은 우리의 신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단점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체가 매우 소중한 이유는 신체가 갖고 있는 지성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훌륭한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체에 대해 극단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신체의 불순한 면들에 대해서 명상하면 매우 도움이 된다. 신체의 원천과 구성요소와 기능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면 신체에 대해서 조금 더 실제적이고 중도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물질적 소유물이나 재산에 대해서 생각하는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부동산이나 소유물 등에 대해서 극단적인 집착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집착을 가지면 만족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은 항상 불만족한 상태로 남아있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원하는데 그것이 결핍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이 가난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막대한 물질적 재산을 갖고 있다 해도 그의 마음이 가난하다면 그는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얻고 싶어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물질적 편의시설은 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개인들이 물질적 재산을 얻고 물질적으로 발달하는 것이 사회와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서 기여하는 길이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건전한 경쟁을 할 필요가 있다. 경쟁이 없이는 진보나 물질적 발달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쟁의 종류를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경쟁은 경쟁자나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려 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선의의 경쟁이어야 한다.
물질적 발달에 경쟁이 필요한 것처럼 불교에서 정신적 발달을 하는데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질적 대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친구나 동료들과 맺는 관계도 다양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나 동료들과 얽힌 관계 때문에 고통과 좌절과 불만이 부가적으로 따라오기도 하지만 만족감과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관계도 있다. 여기서도 우리들이 맺는 관계의 결과는 우리의 지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성적(性的)관계이다. 성적관계는 자연의 일부이며 그것이 없으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극단을 달리거나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키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성적관계의 주요 목적은 귀여운 아기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류의 중생을 살펴보면 어떤 것들은 매우 감탄할만 하다.
예를 들면 백조와 같은 새는 책임감에 바탕을 두고 관계를 맺고 평생을 함께 산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개와 같은 짐승들은 그런 종류의 책임감이 없이 단지 성행위만을 즐기며 어미 개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도 떠난다. 참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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