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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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53
  • 장강뉴스
  • 승인 2024.03.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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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 구름 사냥꾼 2

아버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새어 나갔다
세월도 살림도 남아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일한 생산은
양떼구름처럼 피어나던 줄담배 연기였다

연이어 구름을 만드는 아버지
구름 속에 누운 아버지
구름이 되어 가는 아버지

아버지, 도넛을 만들어 보세요?
도넛이 아니라면 풀빵이라도 만들어요
배고픈 우리들이 사정을 하면 아버지는 
먼 하늘에 눈을 두고
경망스럽게 어찌 그런 짓을 하느냐고
세무서 일도 군청 공무원도
대통령을 뽑는다는 대위원도 마다하였다

금 간 방바닥에서 연기가 새 나오고
구멍 난 양말 구멍 난 내복 구멍 난 창호지 문 속의 아버지

아버지, 이제 더는 생활을 기울 수 없어요
궁핍은 연기처럼 피어나고
희망은 뱀처럼 빠져나가요
느물거리던 담뱃진에 우리의 미래는
가래처럼 끓기만 하였고
앵속꽃 같았던 어머니는 속앓이가 잦았다

젊어서 몇 년 세관 일 할 때
밀수꾼들이 구겨 넣어준 지폐다발이 
날마다 주머니를 부풀렸다지만
아버지의 손을 거친 지폐는 너무 가벼워 바람에 날렸고
무거운 동전은 집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모내기철에도 모시옷 입고 사장거리를 지키며
흘러가는 산자락을 붙잡아 무릎박자에 얹었던 아버지
울 밑에 선 봉선화처럼 터지던 아버지의 노래는
삼다이 장단에 상판에서 고꾸라졌고
구름 나그네는 저녁마다 주막집에서 쓰러졌다

헐겁게 묶은 비사릿대 같았던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 등에 업혀 논둑길 어둠을 쓸며 오고
그런 날에는 구름이 하도 많아서
달빛도 비칠 틈이 없었다

솔가리 같았던 아버지의 손금 사이로
모래알 같은 세월이 흘러나갔다

아무리 붙잡아도 쥘 수 있는 건 없단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쥐려하지 않았기에
그 무엇도 아버지를 가두지 못했고
아버지의 정신줄이 구름처럼 풀어지기 시작 했을 때 
아버지는 천천히 아버지까지 벗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계며 반지 같은 것을 떼어버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손님으로 대했다

아버지를 떠나간 모든 것이 구름이 되었는지
새벽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마침내 몸마저 놓아버렸다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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