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불의의 남편을 잃은 가장의 사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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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불의의 남편을 잃은 가장의 사연(I)
  • 장강뉴스
  • 승인 2024.03.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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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미(강진동성 향우)
서상미
서상미

해남윤씨인 해남에서 빈농의 아들의 장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성행이 온유 유순하여 부모님께 효행이 지극할 뿐 아니라 웃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는 성행이 정숙하여 이미 마을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방년 25세에 김씨의 아내로 출가하여 슬하에 2남 둔 젊은 얌전한 분이었다. 늦은 밤 싸늘한 바람을 안고 홀로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이 무겁고 괴롭다. 아픈 기색이 전혀 없었던 남편의 운명은 이미 주어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본다.

젊은 내게 찾아든 이별 앞에 망연자실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함께 머물던 빈자리의 허전함을 감추고 건강하게 웃으며 애쓴다. 배우자가 없다는 사실을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온기 없는 빈집에 들어서면 어둠만 가득하고 고요한 적막이 불을 켠다.

대화할 상대도 없이 웃다가 울다가 막막함을 인정해야 하는데 혼자라는 이유가 서럽다. 중년의 나이에 성인병의 불청객이 삶 자체를 뒤흔들어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질병이란 불청객으로 또 다른 가정이 파괴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본연의 나로 돌아가 세상과 맞서서 홀로 당당하게 혼신을 다해 살 것을, 다짐한다. 살면서 사랑하는 남편을 상실감으로 슬픔과 아픔이 어쩔지 생각해 본 일이 전혀 없었다. 추측만 했을 뿐 가족을 잃은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해본 적이 없다. 남의 일인 줄로 알았다. 이런 불행이 순식간 빠르게 덮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예고 없이 출근길 교통사고로 싸늘한 배우자의 죽음으로 드리운 상황은 흙과 백 한순간 삶의 판을 뒤덮는 격이다. 아이들이 한참, 공부할 때 불의의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믿어지지 않으나 현실이다. 한참 중년의 나이에 덮친 당혹스럽고 쓰라린 절망감과 공포를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던 두 아들마저 곁에 없다.

큰아들은 3월 군입대를, 고3 수험생인 둘째는 학교 기숙사로 보냈다. 내 곁에 아무도 없어서 두려움과 불안감이 떠나질 않아 무어라 형언할 수가 없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막연한 두려움을 더 엄습했다. 함께 살던 울타리마저 없어져 혼자라는 빈 여백이 더 절절하다. 마치 길 위에 내동댕이친 기분 납득하기 어려운 삶의 흔적이자 단면들이다. 기막힌 처지로 가장이 된 나는 조급해졌다.

누군가 날 위로해 줄이 없는 당혹감과 적절함 가운데 그리움만 더하다. 울어도 울분이 쉽게 가라앉혀지질 않은 슬픔과 고통의 나날을 지냈다. 가슴속에 미처 올리지 못한 말들이 그득 고여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길에서는 그마저 부질없다.

생명은 우리를 지어내신 분의 손아귀에 달려 있음을 알면서도 사람이기에 안절부절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살아온 안주인의 역할은 이처럼 허무하고 안타깝게 끝이 났다. 준비되지 않은 가장인 갑작스런 죽음은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가 잔혹한 현실의 목마름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 남편의 빈자리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뇌로 피눈물을 삼켰다. 시련을 딛고 당당히 새롭게 부딪쳐 보리라.

남편을 잃고 쑥대밭이 된 집, 얼마나 큰 고통의 무게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날의 일이 섬광처럼 스치면서 또다시 가슴이 젖는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웃음 가득히 넉넉하던 호탕한 사람, 살아온 세월 동안 괴로운 날도 많았지만 웃음을 꽃피우던 내 집은 단란하고 행복했다.

시련의 연속 가운데 장맛비처럼 퍼붓던 지난 한 과정도 있었지만, 그의 여자로 살면서 고통 가운데 행복했다. 영원히 지속 가능했던 행복은 아니었던 것이다.

삶이 외롭고 쓸쓸하여 돌아보니 그는 없고 텅 빈 여백뿐이다. 어려운 처지에 도움을 요청할 일도 말할 용기도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공포는 무방비 상태로 내 곁에 그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불안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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