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유심(唯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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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유심(唯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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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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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최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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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만물의 본체로서 오직 단 하나의 실재(實在)라는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며, 모든 존재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마음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정신만의 존재이다. 마음을 일으키면 발심이 되고 마음을 잡으면 조심이 되며 마음을 풀어놓으면 방심이 된다. 마음이 끌리면 관심이고 마음을 편하게 하면 안심이며 마음을 일체 비우면 무심(無心)이다.

처음 먹은 마음은 초심(初心)이고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이 항심(恒心)이며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은 단심(丹心)이다. 작은 일에도 챙기면 세심이고 사사로움이 없으면 공심(公心)이며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참마음이 본심이다.

욕망의 탐심과 흑심을 멀리하고 어지러운 난심(亂心)과 어리석은 치심(癡心)을 머리고 애태우는 고심(苦心)을 내려놓으면 하심(下心)이다. 아~ 내 안에 파도 물결 같은 많은 마음(心)이 있구나.

몸(身)만 안으면 포옹(抱擁)이지만 마음까지 않으면 포용(包容)이다. 운명이란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쓰는 순간 당신 삶의 주인은 운명이 된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행복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에~.

참사랑은 확인(確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믿음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인연의 교차로엔 신호등이 없다. 스치던, 멈추던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젊음을 이기는 화장품도 없고 세월을 이기는 약도 없다.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건 당신뿐이다. 마음의 비밀번호는 오직 당신만 알기에~.

음식은 자기가 뱉은 걸 먹을 수 있지만 말은 자기가 뱉은 걸 먹을 수 없다. 중국 전국시대 묵자(墨子)는 고찰, 근거, 실천 등을 말할 때 세 가지 법칙을 강조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여과 없이 뱉은 말은 나를 해하고 타인도 해치기 때문이다.

영국 대처 수상은 아버지도 대처에게 늘 이 말을 해줬다고 한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서로 간편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잘해준다고 무시하지 말고 져준다고 만만하게 보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잘해라, 늘 한결같다고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사람 마음은 한순간이다.

‘실수’가 계속되면 ‘실망’하게 되고, ‘실망’이 계속되면 ‘포기’하게 되고 ‘포기’가 계속되면 ‘외면’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등 돌리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만 소중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계속 노력해야만 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다소 무언가가 부족한 듯해도 함께 밥을 먹고 전화, 문자, 카톡하고 오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친구 간에 우정이 변치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저 혼자서 사람들 간의 교제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조용히 서로의 가슴을 포근히 어루만져주는 우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정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또한 절제되고 고른 정열이며 아주 매끄럽고 보드라운 감정이다. 그러기에 친구란 귀중한 존재이다. 이러한 친구가 없이 일생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겨운 일이 되겠습니까. 참다운 친구가 있다면 언제나 그는 당신의 잘못을 힐책해 주면 때로는 위로가 되어주며 힘을 빌려 주기도 하며 또 때로는 위로가 되어주고 반려가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친구야말로 부모나 형제보다 더 자신을 알고 있는 존재이다. 때문에, 우리는 부모 형제에게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더라도 친구에게는 거리낌 없이 털어놓은 게 아니겠는가.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면 그의 친구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라는 옛말도 바로 이러한 뜻에서 새삼 되새겨 본다.

경험론의 창시자 베이컨은 이런 말을 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인생을 하직하는 게 좋다.” 너무 극단적인 말이긴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친구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사실 제가 생각할 때도 남자든 여자든 진정한 친구를 갖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일 것 같다.

세상에서 많은 친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이런 사람들이 무엇보다 부럽다. 재물이나 학식이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보다도 말이다.

서양 속담에 “백 명의 친구는 모자라도 한 명의 원수는 벅차다.”란 말이 있다. 친구란 어떤 친구도 그런 만큼 좋은 것이다. 우리는 흉허물없는 친구 사이를 가리킬 때 흔히들 죽마고우니, 금란지교니 하는 말을 쓴다.

수어지교니, 도원결의니, 관포지교니 하는 말들도 모두가 다 참다운 우정을 가리키는 말들이다. 부처님의 말씀에 의하면 좋은 친구란 첫째, 상대방의 잘못을 보면 일깨워주고 둘째, 좋은 일을 보면 마음속 깊이 기뻐하며 셋째, 괴로움에 처했을 때 서로 버리지 않은 사람, 그렇다.

그러한 친구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정말 여간 든든한 게 아니겠는가. 우정은 우리 삶에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참된 친구가 없는 것이야말로 비참한 고독이며, 그러한 세계는 황무지이다. 진실한 친구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고통을 나누어 가지며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하는 그런 벗이어야 참다운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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