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나에 대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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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나에 대한 배려
  • 장강뉴스
  • 승인 2023.12.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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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영(강진성전향우)
안형영
안형영

나를 떠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사람의 기쁨과 안위와 안전 나아가 행복을 먼저 생각할 때 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조그마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때 그의 기쁨을 찾고 그의 행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의를 중시한다는 자긍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공공 교통수단에는 어김없이 노약자 지정석이 마련되어 있다.

나이가 드신 어른이나 임산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제도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과연 이런 제도가 윤리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리란 타인에 대한 주체의 애정이나 배려 그리고 주체의 자율적인 결단을 전제해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제도 자체가 우리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자율적인 행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이 제도는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윤리적일 수 없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비어 있는 노약자 지정석을 두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있었다. 곁에 서 있던 나는 측은해서 노약자 지정석에 앉으라고 이야기하자 몸이 불편한 그 여학생은 얼굴을 붉힐 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보았을 때 그 당시 전철 안에서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여학생이 노약자 지정석에 앉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학생이 전철 안의, 어른들의 시선 특히 노약자 지정석에 미리 앉아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여학생이 노약자 지정석에 편안히 앉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녀보다 나이가 든 어른들이었던 셈이다.

간혹 나는 노약자 지정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야단치며 그 자리에 앉는 나이 든 사람을 본다. 이 노인에게는 노인들을 위한 자리에 젊은이가 앉아서는 안 된다는 당당함이 엿보인다. 노인은 젊은이가 몸이 불편한지를 헤아려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일어나라고 야단을 치는 노인이나 무엇에 쫓긴 듯이 자리를 또는 젊은이에게는 윤리적이라고 헤아릴만한 데가 전혀 없다. 두 사람 사이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란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야단칠 때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도 몰라.”라고 혀를 끌끌 찬다. 이렇게 한탄하면서 그들의 뇌리에는 한 명의 사상가 즉 공자가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논어를 넘겨보면 공자도 자신이 살던 춘추시대가 무례한 사회 즉 예가 없는 사회라고 탄식한다.

그렇다면 예를 중시했던 공자는 노약자 지정석에 피곤한 몸으로 앉아 있는 젊은이를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의문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구절이 논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공자가 태묘에 들어갔을 때 일일이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누가 저런 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가서 일일이 묻고 있다니”.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다. 평생동안 실천할만한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바로 서(恕 )다.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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