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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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40
  • 장강뉴스
  • 승인 2023.12.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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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 신작시 - 장흥 사람들은 시를 물고 태어나 소설이 되어 죽는다

1
가슴의 한 갈피에 시퍼런 강이 끼워져 있다
장흥 사람들 가슴의 한 갈피에는 시퍼런 강이 끼워져 있다
시를 아는 장흥 사람들 가슴의 한 갈피에는 시퍼런 강이 끼워져 있다
소설을 사는 장흥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는 시퍼런 강이 끼워져 있다

늙은 시인은 시를 생각하며 노을을 물들이고
어린 소설가는 사람의 숲에서 문장을 줍는다
이제 태어난 아이는 서툴게 문장을 배운다 장흥식으로 배운다
서럽다거나 기쁘다는 말 한마디도 장흥에서는 허투루 나오지 않는다
눈물 난다는 말 한 마디도 유치 암챙이 골짜기를 더듬다가 온 장흥을 쓸고 난 뒤 회진 앞바다 쯤에 이르러 숭어처럼 틔어나온다

장흥에서는 지는 해도 그냥 지지 않는다
겨울에는 노루꼬루맨치로 짜리몽땅한 해가 경물에 수제 시친 듯 퍼뜩 지나가고
여름 해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핀엿 같아서 지상에 쩍 달라붙었다가 늘창하니 늘어지다가 서산을 넘어갈 때도 짜울라지다가도 자빠지지 않고 엿실처럼 끈끈허니 붙어 있다가 햇살 한 오리까지 거미줄 몬양 나무 꼼짐뱅이에 붙어 있다가 마침내 마지막 한 오리가 끊어진 뒤에야 겨우 진다

2
장흥에는 말의 숲이 있다
말에서 싹이 나고 말에서 꽃이 핀다 어떤 말은 하늘을 뚫을 듯 푸르게 자라고 어떤 말은 끝내 하늘의 별에까지 닿는다
천관산도 제암산도 아닌 곳에 또굴또굴 말이 굴러다니는 숲이 있다
그곳에서는 나무들이 인간의 말을 하고 계곡물이 시를 지으며 흘러내린다
자라난 말은 더욱 자라고 미처 싹이 돋아나지 않는 말의 씨들이 묻혀 있는 곳
살아있는 문장들이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다

그 숲에는 이야기가 솟아나는 샘이 있고 문장의 나무가 자란다 
오래전의 설화가 부엽토가 되어 쌓여 있는 곳 
사람의 말이 알이 슬었다가 태어나는 곳
우연히 발길만 스쳐도 시가 꿈틀거리고
특별할 것도 없는 골목길이 소설이 되는 곳
당신의 말이 나뭇잎 아래로 스미어 삭아
시가 되고 소설이 되어 싹이 트는 곳

3
장흥의 골목길에서는 바람도 시시시 하며 분다
당신이 딛고 있는 논둑길 하나도 소설 속으로 이어진다
행여 길을 가다가 발끝에 무언가가 걸리거든 돌부리라고 오해하지 말라
당신은 문장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장흥 사람들은 
시를 물고 태어나 소설이 되어 죽는다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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