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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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38
  • 장강뉴스
  • 승인 2023.12.0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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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신작시 - 송기숙

길을 가다가 어이 기숙이 하고 부르면
한반도 여자들 중 절반은 뒤를 돌아볼 것 같다
이름은 마을의 어느 집 딸아이 같고
생긴 것은 울퉁불퉁 머슴 같은 사람
마음은 여리디여려서 들국화 송이로 눈물 흘리고
약한 사람 아픈 사람 보듬다가 두 손이 거북손처럼 딱딱해진 사람

너무 할 말이 많아서 먹처럼 새카매진 사람
너무 많은 일을 해서 발바닥이 다 닳아 몽당빗자루처럼 뭉툭해진 사람
너무 바빠서 간다는 말도 없이 저승으로 훌쩍 가버린 사람

몽둥이에 물고문에 고춧가루 고문을 당하면서도
웃음만은 남아서 불회사 석장승처럼 허허 웃는 사람
우리의 숨결이 뜨겁고 가빠서 잠시 멈출 때면
당산나무처럼 제 그늘의 품을 넓혔던 사람
몇백 년은 우리네 못난 백성들 편에서 꿋꿋하게 서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

자기밖에 모르는 군인들이 총칼을 앞세워 광주를 짓밟았을 때
맨몸으로 총구 앞에서 맞짱을 섰던 사람
군부정권의 서슬이 새파랬을 때도
그 우두머리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힘 있는 자들이, 잘 살아 반지르한 자들이 앞장서서 각하의 업적을 치하할 때
외롭고 당당하게, 어이 두환이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하고 끝까지 사람으로 살았던 사람

가만 생각하면 조금 전 마을 길에서 마주친 것 같은 사람
이승을 몇 번이나 다녀갔는지 어떤 험한 일 앞에서도 너털웃음을 웃고 
도무지 처음 살아본 것 같지 않은 사람

다시 우리 곁에 와 차가워진 어깨에 손 얹고 있는 것 같은 사람
국민을 모욕하는 막돼먹은 정권을 향해서라면
언제든지 호통을 한 바지게 지고 와서 똥거름 인양
그들의 낯짝에 부어버릴 사람

함부로 자라는 독재의 싹을 낫으로 툭 쳐서 잘라버릴 사람
역사 앞에서 정의 앞에서 쭉정이들 다 솎아질 때
마지막 한 톨의 씨앗으로 남을 사람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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