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이념’보다 ‘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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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념’보다 ‘민생’
  • 장강뉴스
  • 승인 2023.10.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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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긍(세명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권순긍 교수
권순긍 교수

 

서울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강서대전’이 집권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민주당 후보와 무려 17%의 격차를 보여 말 그대로 ‘참패’고 ‘폭망’이었다.

그러자 그동안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주’하던 대통령은 선거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변화’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공무원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태우 후보를 사면, 복권시켜주고 다시 구청장 보궐선거에 공천했으니 대통령이 무언가 ‘결자해지’(이준석 전 당대표의 발언) 해야 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국민은 늘 옳다”며 ‘이념’보다 ‘민생’에 집중하자고 했다 하니 지켜볼 일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중요한 것은 수도권의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메타이기 때문이다.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지역구도가 비교적 희박한 수도권의 50만 유권자를 대상으로 민심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예비선거인 셈이니, 여야의 지도부가 총출동하여 전면전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니 선거결과에 따른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민심이 현 정권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민심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철학이 ‘이념’?

우선 대통령은 지난 8월 29일 여당 국회의원 연찬회의 모두(冒頭) 발언에서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철학이 바로 이념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던졌다.

그 ‘이념’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이념일 것인데, 지금이 냉전시대도 아닌데 왜 철지난 ‘이념’ 타령일까? 아마도 현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갈라치기 하더니 급기야는 불순한 ‘공산주의’와 연결시키기 위해 이런 화두를 던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러자 뒤를 이어 육사교정에 세운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보훈부 장관의 발언이 이어졌다.

주적(主敵)인 북한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한때 ‘공산주의’를 신봉한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장교를 양성하는 육사에 둘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홍범도 장군(1868~1943)은 일찍이 의병전쟁에 참여했었고, 의병부대가 궤멸되자 대부분 독립운동 세력이 그렇듯이 북간도로 건너가 1919년 5월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였다.

독립군 사령관으로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1921년 흑룡강을 건너 연해주로 건너가 거기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당시 소비에트연방 내에 거주했으니 독립군 활동을 위해 ‘공산당’에 가입했던 것인데, 그것이 지금 무슨 문제가 되는가?

당시 소련은 미국과 더불어 연합국의 일원으로 나치독일과 일제를 물리치지 않았던가? 해방 이후에 ‘공산당’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이미 해방 전에 사망했으니,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이념을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홍범도 장군은 1962년 박정희 정권에서 건국훈장이 수여됐고, 2016년 2월에는 박근혜 정권에서 일곱 번째 잠수함의 이름으로 명명됐으며, 1921년 8월 문재인 정권에 의해 카자흐스탄에서 유해가 송환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는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홍범도 장군을 폄훼(貶毁)하려는 세력들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역사를 지우려는 자에게도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일갈(一喝)했다.

지금은 정치이념으로 대립하던 시절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1991년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로 ‘이념’의 시대가 저물고 민족과 종교를 중심으로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이슬람문명권과 기독교문명권의 충돌은 이미 2001년 9.11 테러를 통해 극단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두 문명의 충돌로 ‘이념’과는 무관하다.

‘정덕(正德)’보다 ‘이용후생(利用厚生)’

더욱이 대통령은 ‘이념’을 강조하는 발언에서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다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이런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이 없습니다.”고 단언했다. ‘이념’을 ‘실용’에 앞세우겠다는 것인데, ‘실용’은 확대하자면 ‘민생’에 해당될 것이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허생전(許生傳)>을 보면, 허생이 변산반도의 군도(群盜)들을 데리고 무인도에 들어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일본과 무역을 해서 백만 냥을 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적엔 먼저 부유하게 만든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고 당부하고는 나갈 수 있는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섬을 떠났다.

문자를 만들고 의관을 제정하는 등의 덕을 바로 세우는 ‘정덕(正德)’보다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이 먼저라는 것이다. 오늘날로 바꾸면 ‘이념’보다는 ‘민생’을 챙기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배부르고 등 따스한 뒤에라야 정치이념이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18세기에도 당연한 이치가 21세기 한국정치에는 왜 통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의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에 무역적자가 지난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무려 754억 달러(101조원)에 이른다.

‘이념’을 강조해 전체 수출의 35%를 차지하던 중국을 적대시해서 생긴 결과다. 물가는 오르고 청년실업이 증가하며 자영업자들이 빚에 허덕이는 이 팍팍한 현실이 민심을 돌리게 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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