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25
상태바
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25
  • 장강뉴스
  • 승인 2023.08.21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작시 - 투명한 얼굴

투명한 얼굴을 거리에 놓았다 누군가는 밟고 지나가고 누군가는 이리저리 만지고 주물럭거리다가 찌그러진 채로 그대로 두고 갔다 얼굴은 말이 없었다

이 자가 도둑질을 한 자로군
도둑이 다가와 제 얼굴을 투명한 얼굴 위에 씌웠다

이 자가 살인범이군
살인범이 다가와 제 얼굴로 덮었다

이 봐 이 얼굴은 네 얼굴이 아니야

칼을 든 이가 다가와 수염을 달고 눈동자를 날카롭게 찢어 놓았다 얼굴은 가만히 있었다 집 없는 개가 다가오더니 무섭다며 몸을 움츠렸다 얼굴은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얼굴은 투명해서 시시때때로 모습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침을 뱉거나 욕을 하며 지나쳤지만
투명한 얼굴은 화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던지듯 
절망이나 분노나 기쁨 같은 것을
투명한 얼굴 위에 버렸다

한 소년이 다가왔다
나는 나를 견딜 수가 없어

소년은 돌멩이로 제 얼굴을 짓찧었다
뭉개진 소년의 얼굴을 투명한 얼굴이 가만히 덮어주었다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