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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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20
  • 장강뉴스
  • 승인 2023.07.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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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 나는 말을 잃어버려서 앵무새를 키워요

앵무새는 복사기 같아서 주머니에 넣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고 죽지 않는 앵무새라면 휴대폰처럼 가방에 넣고 장작을 패거나 카페에 갈 수도 있지요 장작을 패는 카페를 생각했어요 기분이 꿀꿀할 때는 어떻게든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앵무새를 샀다고 너는 말합니다
앵무새를 샀다고?

말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너는 말합니다
말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앵무새 모이를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고 너는 말합니다
앵무새 모이를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고?

앵무새가 말을 만들어야 하니까
앵무새가 말을 만들어야 하니까?

앵무새는 도대체 어떻게 말을 만들까? 

할 말이 없어 너는 말합니다
할 말이 없다는 너의 말이 아파서 
할 말이 없는 너의 기분 속으로 들어갑니다

너의 기분을 알아내고 싶어서 너의 기분에 입장 해 상영 중인 기분은 필름이 끊어지지 않아 기분이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이해하는 게 어려워 … 화면 속의 기분을 꺼내 펼쳐볼까 기분은 들판을 이루고 산으로 솟고 강이 되어 흘러가 기분이라는 장소  … 외로울 땐 기분에 가자 … 기분에는 습기가 많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기분의 폭포는 말랐어 물줄기 흔적만 남아있는 폭포 속으로

첨벙 들어가려 했는데 

머리가 돌벽에 부딪혔습니다 나는 너의 기분을 재생하지 못합니다 앵무새가 아니라서

나는 말을 잃어 버렸어 너는 말합니다
너는 말을 잃어 버렸다고?
나는 내 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설음, 구개음, 연구개음, 유성음, 음음

너는 앵무새처럼 밝은 색이 섞인 옷을 입고 너는 시커먼 커피를 마십니다 너는 마시고 말을 잃었다는 너는 말합니다 너는 입술이 붉고 앵무새는 아니지만 앵무새 같은 옷을 입고 나는 시를 생각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시로 써야 하지? 나에게 묻고 궁리하고 입을 벌려 말하지는 않습니다 너는 앵무새 먹이에 대해 궁리해 봤다고
말합니다 나는 말을 만들고 있습니다

과일도 먹고 고기도 먹어 앵무새는 잡식성이거든
닥치는 대로 먹고 샤워를 좋아 해
자유롭게 날게 해줘야 한대

너는 말합니다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야? 
들었는데
듣는 태도가 문제야
열심히 듣고 있어
그렇다면 말을 해야지

말을 해야 말을 듣는 거라는 너 
경청의 기술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결론
가장 따뜻한 배려는 듣는 것입니다

밥을 주는 건 좋지 않대 코가 막힐 수 있거든
키스는 절대 금물

키스는 절대 금물
비싸거나 위험하거나 둘 중의 하나
네 입술이거나 내 입술이거나 둘 중의 하나

말을 잃어버려서 말이 많은 너와
말을 만들기 위해 입을 다문 나 사이로
앵무새가 날아다닙니다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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