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학폭’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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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학폭’의 두 얼굴
  • 장강뉴스
  • 승인 2023.04.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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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긍(세명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권순긍 교수
권순긍 교수

지난 3월 방영을 마친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 <더 글로리>가 ‘학폭(학교폭력)’을 사회 이슈로 부각시켰다.

여고시절 ‘학폭’을 당해 몸과 영혼까지 망가진 피해자가 성장해서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드라마에 등장하는‘학폭’의 내용이 참으로 사악하고 섬뜩하다. 글로 묘사하기 힘들 정도로 가해자들이 따돌림 대상자를 고문하고 학대한다.

괴롭힘을 당하던 학생 중 하나가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러니 가해자를 향한 복수에는 오로지 응징만이 있을 뿐, 화해도 타협도 없었다. 그야말로 ‘달콤한 복수’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도 과연 이런 ‘달콤한 복수’가 가능할까? 확실히 아닐 것이다! 최근 발생했던 두 가지 사례는 ‘학폭’이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청소년기의 일탈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학폭’ 역시 사회의 축소판으로 가해자나 피해자가 속한 계층과 긴밀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무난히 입학한 ‘학폭’ 가해자

지난 2월 경찰서열 2위인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가 ‘학폭’ 문제가 불거져 낙마한 검찰 고위직 출신의 정순신 변호사 아들 정군은 가해자였다.

민족사관고 시절 정치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피해자들에게 ‘빨갱이 XX’니 ‘돼지XX’등의 폭언을 일삼았다 한다. 이 때문에 2명의 피해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자살을 시도하다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정변호사의 아들은 ‘학폭’으로 민족사관고에서 강제전학 조치가 내려지자 무려 10차례나 징계불복절차를 거듭한 끝에 대법원까지 가서야 전학처분이 합당하다는 판결을 받고, 반포고로 학적을 무난히(!) 옮겼다.

게다가 반포고에서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생활기록부에서 ‘학폭’ 가해 내용을 삭제하는 안건으로 학폭위가 열렸는데, “학생이 사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충동적 행동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했다.”며 만장일치로 ‘학폭’ 기록을 삭제했다.

가해자의 아버지인 정순신은 한동훈 법무장관과 서울법대 동문으로 사시 37회 동기며, 현 대통령과도 서울중앙지검 시절에 ‘인권감독관’으로 같이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아들의 ‘학폭’에 따른 강제전학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진행할 2018년 무렵이다. 그렇게 검찰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인물이기에 ‘학폭’ 가해자인 아들이 ‘상위 1% 기득권’이라며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곤 했다고 한다.

학폭위에 출석한 피해학생이 “결국엔 가해자가 이기는구나.”라고 체념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막강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설사 ‘학폭’ 가해자가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폭’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고생과 어이없는 소송

그런가 하면 고 박주원의 경우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고 박주원은 강남의 진선여중에 다닐 때부터 ‘학폭’에 시달렸다. 친구 4명으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강화도 꼬마’니 “꼴 같지 않은 게 재수 없다.”는 등 600개가 넘는 욕설에 시달려야 했다.

어머니가 답답해 학교를 찾아갔더니 “자존감이 낮아 대응 못하는 건데 뭘 할 수 있겠냐?”며 오히려 아이가 문제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한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딸을 강화도로 전학시켰고,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다시 강남의 은광여고로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도 ‘학폭’은 그치지 않았다. “친한 척 한다.”든가 “재수 없다.” 등의 욕설과 함께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박주원은 결국 홀로 외롭게 다녔던 수학여행을 끝으로 2015년 5월, 7층 빌라의 옥상에서 몸을 던져 16세 꽃다운 삶을 마감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도 이어졌다. 딸의 억울한 죽음, 참척(慘慽)을 당한 어머니는 주변 지인의 소개로 1천만 원의 수임료를 어렵게 마련해 이른바 <조국흑서>의 공동저자인 권경애 변호사를 선임해 서울교육청과 학교법인, 가해자 등 34명을 고소했지만 정작 재판의 결과는 어이없었다.

2022년 1월,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했지만, 2022년 9월, 10월, 11월에 진행된 세 차례의 재판에서 권변호사가 모두 불출석해 어이 없이 패소하고 말았다.(어떻게 이런 일이!) 권변호사는 자신의 불출석으로 패소했다는 사실을 5개월 동안이나 유족인 어머니에게 숨기다가 최근에야 밝혀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어머니는 4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목 놓아 울어 봐도 분통이 터져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며 <제 앞에 있는 건 죽음뿐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자식을 죽게 한 가해자가 오히려 승소한 기막힌 소송과정을 공개했다.

고 박주원의 유족이 정변호사처럼 권력이나 돈이 있었더라도 그렇게 어이없이 패소했을까? 어머니 이기철 씨는 소송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청소노동자’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한 계층이 ‘학폭’이나 소송과정에 관련된다는 반증이다.

어머니는 “허구한 날 정치만 떠들면서 자신이 맡은 사건을 불참으로 말아먹은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변호사 아들의 행동지침인 ‘강약약강(강한 자에겐 약하게 나가고, 약한 자에겐 강하게 나간다)’의 방식이 이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정말 ‘글로리’하게 ‘학폭’을 이길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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