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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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 장강뉴스
  • 승인 2022.10.13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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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바닷가 자갈들도 우리하고 놀고요

푸른 하늘 저 별들도 우리하고 놀아요

많기도 하구나 우리들의 동무들

정다웁게 잘 자라자 선감학원 형제들

1964년 봄이었을 것이다. 몇 명의 소년들은 굶주리다가 죽은 친구를 원내 야산에 묻고나서 이 노래를 불렀다.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들이 흘린 눈물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정근식
정근식

경기도 안산의 선감학원에서 있었던 풍경이다. 그 소년은 1963년 5월 1일, 쌍둥이 동생과 함께 이곳에 수용되었다. 그날 서울 시립아동보호소에서 함께 군용 트럭을 타고 온 소년들은 약 25명이었다.

그는 다행히 초등학교 학생이 되었지만, 굶주림에 시달렸고 병약했다. 이듬해 봄을 넘기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의 친구들이 불렀던 노래는 조회에서, 작업장에서 부르던 선감학원가였다. 심지어는 얻어맞으면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꽃신의 비밀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원한 선감원이라는 이름의 부랑아동수용소, 그곳은 40년간 지속되었던 고난의 현장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이곳의 원생들을 ‘연성’하여 ‘산업전사’로 만들었고, 전쟁 막바지에 삼척이나 나가사키에 있는 탄광에 보냈다.

광복 후인 1946년 이곳은 선감학원이 되었고 경기도에서 운영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아동들의 고초는 지속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82년까지 4,691명이 수용되었는데, 이들의 일부는 부모가 밝혀져 귀가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아동들은 귀가하지 못하고, 각종 노역과 굶주림, 질병, 구타와 학대에 시달렸으며, 일부는 꽃다운 나이에 사망했다.

선감학원은 1982년 폐쇄되었지만, 우리가 이들을 일부러 모른 체 한 것은 아닐텐데, 이곳을 나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몰랐다.

2016년 경기도 의회에서 처음으로 진상조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 묻힌 그 소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원아대장에는 퇴원 사유가 미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친구들은 그의 묘지를 기억해냈다. 그의 작은 무덤에서 꽃신 한 켤레가 흙범벅이 된 채 발굴되었다. 그 꽃신은 누가 주었을까? 그와 함께 끌려 왔지만 곧바로 격리되어 다른 곳에서 살았던 쌍둥이 동생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에 자극을 받아 경기도는 2017년 선감도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사전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로부터 3년이 흐른 뒤에 진실화해위원회가 다시 출범하자 그의 친구들은 경기도 부지사와 함께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위원회에서는 지난 1년여 기간에 신청인과 참고인 조사를 거의 완료하고 증언들을 확인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곤혹스러운 것은 공식적으로 24명의 사망자가 기록되어 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아동들이 원내에서 사망했고, 또 상당수가 탈출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사망했다는 증언이 많다는 점이다.

위원회는 이곳에 묻힌 유해의 일부라도 확인하여 진실을 좀더 명확하게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시굴조사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잠자리의 애도

지난 9월 26일 개토제를 열었다. 푸른 하늘 아래, 소년들이 불렀던 노래에 나오는 별들을 대신하여 친구들이 되고자 했는지, 가을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날았다. 그 노래를 합창했던 소년들이 이제는 60대 후반 또는 70노인이 되었다.

이들에게 친구들의 묘지는 더 작고 편평하게 보였다. 피해자 대표는 어린 아동들이 수용되었고, 탈출하기 어려운 섬에 격리되었으며, 공무원들이 직접 관리했다는 것이 선감학원 인권침해사건의 핵심이며, 완전한 진실규명으로 피해자들이 용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가도 그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날 오후, 시굴했던 첫 번째 묘지에서 15세 가량의 소년 치아와 학생복 단추 세 개가 나왔다는 전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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