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2020년 한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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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2020년 한 해를 보내며
  • 장강뉴스
  • 승인 2020.12.2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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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논설위원)

집단감염이 일상으로 파고들면서 코로나19 대유행 기세가 낙엽에 불붙는 것처럼 거세다. 코로나19의 가장 큰 위기에 선 듯한 분위기다.

최일중
최일중

코로나19로 대변되는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간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고 내일의 시작이다. 우리는 어제라는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할 수 있고 오늘이라는 현재가 있기 때문에 내일이라는 미래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제는 오늘을 위한 시간이었고 오늘은 내일을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며 내일은 오늘 때문에 존재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달이면 사람들은 숙연해지는 마음의 시간을 갖는다. 곧 인생의 연륜을 하나 더 얹게 된다는 감회 때문이다.

이때 새삼스럽게 인생의 의미도 생각해보면서 지나온 역정을 되돌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영욕이 교차되어 있다.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해마다 사람들이 맞는 마지막 자세다.

어느새 연말이다. 예년 같으면 송년회 등 각종 연말 스케줄을 잡고 사람들과 만나 흥청망청 바쁘게 보냈을 시기이지만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송년회를 비롯한 연말모임 개최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매년 느끼지만 특히 올해는 뭘 하고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한 해가 금방 지나갔다. 열심히 달렸지만 인격적이나, 사업적으로 큰 발전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 더 그런 마음이 드는 듯하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마음 편한 핑계를 대고 싶지만 앞서 달려가고 있는 판에 왜 고민만 많아지는가?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왜 지금 살고 있는가? 사춘기 소년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해 하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본다.

분명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일은 나의 선택과 결정의 결과다. 연초에 결심한 일을 벌써 이룬 사람도 있고 연초의 결심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한 사람도 있다.

어쨌든 내 선택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못하지도 않았지만 크게 잘한 것도 없다. 과거를 떠올리고 지금을 반성하면서 내일을 계획하며 다시금 주먹에 힘을 넣어본다.

나는 그렇다치고 주위를 돌아보며 혹시 내 처신으로 곤란해진 사람이 있는지,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지 돌아본다. 돌아보기 무섭게 또 부끄러워진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가족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을 떠올리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에서 수신과 제가조차 제대로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고작 마음 하나 감정 하나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상처받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본다.

세상은 나와 남이 더불어 살아간다. 어떤 일이나 사업도 나와 관계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맺고 그 연을 어떻게 이어가는가에 따라 그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본다.

좋은 때를 만나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좋은 기회를 잡던 사람마다 주어진 선택의 폭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그릇만큼 성장할 것이다.

그 그릇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몫이고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나를 단련하느냐가 그 그릇의 크기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나뉠 것이다.

우리가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목적을 세우고 뜻을 펴나갈 때 나와 다른 사람 모두가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덕치와 법치 중 무엇을 기준삼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철두철미하게 법치를 적용하고 타인에게는 덕으로서 사람을 베풀어야 진정한 군자의 삶이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뜻을 펼치는 것이 성공의 의미라면 그 모습은 성인군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며 한 해를 마무리해 보자. 

요즘을 올해의 끄트머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끄트머리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맨 끝부분 또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일의 단서나 실마리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다. 성경에는 겸손을 뜻하기도 하다.

바울은 자신을 끄트머리에 비유하면서 스스로를 낮추기도 하였다. 지금은 올해의 끄트머리지만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끄트머리는 새로운 시작을 예고할 뿐만 아니라 부족했던 점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겸손의 시간이기도 하다.

끄트머리가 끝이면서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인생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고 새로운 단서나 실마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끝과 시작은 공존하는 단어이다.

그러면서 끄트머리는 신기한 역설이기도 하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로 죽음은 끝이나 마지막이 아니며 오직 끄트머리일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의 문이 열린다고 믿을 수 있다. 끄트머리는 끝과 시작의 사이여서 더욱 여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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