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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10 - 창원 구씨~평해 구씨최일중(한국성씨본존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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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8  13: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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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昌原 具氏(창원 구씨)

始祖 仇成吉(시조 구성길)

시조 구성길의 자(字)는 완지(完之)로서 고려 혜종 때 찬성사를 지냈다. 그의 선조는 송(宋)나라 대부인 구목(仇牧)인데 우리나라에 귀화한 연대는 상고할 길이 없다.

구성길은 혜종이 죽자 권신 왕규가 반란을 일으켜 왕시렴이 이를 진압했는데 함께 공을 세우고 의창군을 칭호받고 서경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구희도 찬성사를 역임했다.

구씨를 구씨(具氏)로 개성한 것은 조선 정조 때 仇氏姓(구씨성)을 具氏姓(구씨성)으로 사성하면서 부터이다.

창원구씨는 구설(具雪)을 1세조로 하고 구종길을 중시조로 하고 있는 바 구종길의 아들 구한복은 부사공파, 구동설은 진사공파, 구동직은 승지공파로 각각 분파되었으며 구원길의 아들 구석훈은 처사공파의 파조가 된다.

창원구씨의 중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구종길은 세종때 홍문관 직제학을 역임했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재능이 특출하여 왕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며 구복한은 강계부사 겸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구자평(具自平)은 사헌부 장령으로 재직할 때 단종의 손위가 있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한 후 끝까지 절개를 지켜 후에 명신록에까지 올랐다.

구씨가문이 자랑하는 사충(四忠)은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워 가문을 빛냈다. 사충은 구응진, 구응삼, 구응성, 구동을 일컫는다. 그 가운데 구응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김해에서 전사했고 그의 아우인 구응창과 구응성 그의 아들 구동은 구응진을 도와 크게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때 경기전 참봉으로 재직하다가 전쟁의 위급한 속에서도 이 태조의 어진과 전주사고에 보존되어 있던 왕조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소개시켰다가 다시 강화까지 옮겨 전화를 면하게 했던 구정려도 창원구씨가 크게 자랑하는 선조이다.

구기환, 구형주, 구민환, 구재돈, 구재황, 구정기 등은 모두 효와 예로서 높이 추앙받고 있는 인물들이며 구영우는 풍수지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절충오위장군으로 문무에 뛰어났다.

▲인구: 서울 3,774, 경기 2,068, 강원 473, 충북 237, 충남 1,068, 대구 855, 경북 1,096, 경남 6,236, 전북 1,071, 전남 1,054, 부산 4,120, 제주 74, 계 22,126

〈29〉 平海 丘氏(평해 구씨)

始祖 丘大林(시조 구대림)

평해구씨의 시조 상서공 구대림은 당나라 사람으로 황씨의 도시조가 되는 학사공 황락과 함께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일본에 사신으로 가던 중 중도에서 풍랑을 만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 남쪽 기슭에 표착하면서 본관을 평해로 삼았다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평해구씨세보에 기록되어 있다.

시조 구대림은 광록대부 좌복야상서를 지냈다. 그의 선계는 강태공인데 그의 후손들이 강(姜), 여(呂), 구(丘), 노(盧)씨 등 8개 성으로 분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씨는 중국 산동성 영구라는 곳에 정착했는데 영구의 구(丘)자로 성씨를 삼았다고 중국구씨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구씨 중 일부는 구(丘)자가 공자(孔子)의 이름과 같으므로 구(邱)자로 성을 표기하고 있다.

구씨는 중국 본토 이외에도 대만에 40 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홍콩,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도 산거하고 있다.

평해구씨는 시조 이후 600년 동안 그 씨계가 실천되어 왔는데 고려 공민왕때 민부전서를 지낸 구선혁을 1세조로 하고 평해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구선혁은 이방실과 함께 홍건적을 토벌하여 대공을 세운 인물이다.

평해구씨는 안장공, 구종직의 증손인 구맹전이 조선조 중종때 사화를 피해 충남 서천군 문산면으로 낙향한 이후 이곳이 집단세거지로 발전했는데 1930년에 이르러서 서천군을 비롯해서 부여군 옥산면, 경북 상주군과 영양군 그리고 강원도 철원군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구천우는 평해구씨의 뿌리를 정착시킨 인물로 고려말 봉익대부판도판서를 지냈는데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충숙왕 때 대호군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에 미루어 일찍이 치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세손 구춘호는 고려말 통헌대부 판사재시사상호군을 역임했으며 조선조에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증직되었고 그의 아들 구양선은 선무장 풍저창부사 증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지의금부사 병조참의를 지낸 구춘보의 아들 구차승은 영해부사를 거쳐 병조판서를 증직받았다. 평해구씨를 명문갑족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인물로 안장공 구종직을 들 수 있다. 그는 구양신의 둘째 아들로 경서에 능통하였으며 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6대에 걸쳐 공조판서와 좌찬성을 지냈다.

이외에 첨절제사를 지낸 구차승의 세 아들 구치동, 구치곤, 구치공은 각각 병조정랑 대사헌 집의로 치사하여 잠영지신으로 활약했다. 또한 구달손은 직제학을, 구희필은 첨절제사 구민원은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평해구씨는 학계, 재계 등 각 분야에 걸쳐 많은 지도급 인사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서천파 집안에서 형제박사 탄생에 이어 그들의 장질까지 박사가 되어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구병삭은 법학박사로 고대교수로 재직하면서 신법학통론, 한국헌법론 등 주요저서 이외에도 많은 저서를 남기고 있어 법학계의 태두로 존경받고 있으며 그의 아우 구병상은 의학박사로 고대 산부인과 교실을 이끌면서 한국 최초 시험관아기를 탄생시켜 우리의 의료수준이 세계에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입증시켰다.

구범환씨는 위 두 사람의 장질인데 역시 의학박사로 숙부인 구병삼씨와 같은 고대 의대교수로 재직하면서 유방암연구에 몰두해 유방암의 예방 및 조기발견 그리고 성공적인 치료법 개발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이상과 같은 연유로 이들 세 사람을 가리켜 서천삼박 또는 숙질이 다같이 고대에 재직한다 해서 고삼박이라 부르고 있다.

▲인구: 서울 3,282, 경기 1,422, 강원 116, 충북 119, 충남 4,688, 대구 53, 경북 133, 경남 156, 부산 152, 전북 340, 전남 69, 제주 20 계 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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