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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지나갔다.
운현은 6학년이 되었다.
담임 선생은 일본 사람으로 바뀌었다.
교실 안은 적막으로 단단히 응고 되어있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것같이 불안했다. 담임선생은 이유 없이 얼굴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굶주린 사자 같은 성난 표정에 학생들은 잔뜩 긴장했다.
“여러분은 소학교의 가장 상급생인 육학년이다.”
담임선생은 입을 굳게 다물고 교탁에 서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학생들을 노려보다가 찢어진 목소리로 악을 썼다.
“…….”
학생들은 잔뜩 겁에 질려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힐끗힐끗 선생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천황패하께서는 무식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조선 사람들을 도와주며 보호하고 계신다.”
담임선생은 웅변을 하듯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동자를 굴렸다. 숨을 몰아쉬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
학생들은 순사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한 것처럼 몸을 바르르 떨었다.
“침략하여 갈취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공출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자금이다.”
담임선생은 숨을 멈추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천황폐하께서는 조선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주변의 강대국의 침입을 막아주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만약에 일본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소련이나 중공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은 그 보답으로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제국의 깃발아래에 똘똘 뭉쳐야 된다. 알았느냐. 조선은 일본의 버금가는 민족이기 때문에 대일본제국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 은덕을 알고 천황폐하를 받들어야 한다. 알아듣겠냐?”
담임선생은 종례하면서 학생들에게 쇠뇌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틈만 나면 충성을 주입시켰다. 완전한 식민지를 만들고 있었다.
‘미친놈들!’
한 학생은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며 두런거렸다.
“학교가 파하면 집에 가면서 신사 당에 들여 신사참배를 하여야 한다. 말도 조선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어를 대화해야 한다. 잊지 말고 실천하도록!”
담임선생은 학생들을 둘러보며 강조했다. 집으로 돌려보내면서도 반복해서 당부했다.
종례가 끝났다. 학교가 파하여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다.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천황폐하가 조선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아.”
“놀고 있네.”
“공출과 강제징용도 정당하지 않아?”
“조선을 위한 것이라고?”
“조선을 겁나게 사랑해서!”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하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버리고 사랑한다고?”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어와 정신까지 착취하려고 하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신사참배나 잘해!”
학생들은 남이 듣지 않도록 속삭이며 울분을 토해냈다. 서로에게 눈짓을 하며 각자의 집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남의 나라를 빼앗아 놓고 침략을 정당화 시키고 있네. 조선 사람들을 우롱하며 가지고 놀고 있어.’
운현은 속이 뒤틀려 비웃었다.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으니 조롱하여도 당해야만 되었다. 각종의 공출이라는 면목으로 강제징용과 식량이나 여러 가지 물건 등을 강탈하여도 어쩔 수 없이 빼앗겨야만 했다. 그런 짓거리를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조선은 침략을 당하였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되었다. 감사는 마음으로 충성하는 체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목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죽지 않으려고 발발 기고 있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강도처럼 강탈해 가면서 선심을 쓴 것처럼 도와준다고?’
운현은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일본인 담임선생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음미했다.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도 함께 되새김질하였다. 반취하면 할수록 울분이 치솟았다. 국민들은 생명을 부지하려고 갖은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압박과 고통과 서러움과 괴로움에서 신음하며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공출이 무엇인가? 강제징집, 강제징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놋그릇까지 갈취해서 실탄을 만들어 전쟁하여 사람을 죽이고 남의 나라를 빼앗아 속국으로 만들고….’
운현은 일본이 벌리는 잔인한 행태를 다시 상기시켰다. 육학년이 되니 조국의 실정에 귀가 밝아지고 어섯눈이 뜨이는 것 같았다. 조선 사람들은 눈을 뜨고 보고 있는데도 당연한 것처럼 코나 귀를 베어가고 있었다. 반항하지 못하고 수굿이 당하기만 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다. 무서워서 벌벌 기었다. 비굴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몰이라고?’
운현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아니꼽고 더럽더라도 소학교는 졸업해야지?’
운현은 자신에게 물으면서 대답을 요구했다. 입술을 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들판에는 제비들이 자유롭게 휘저으며 날아다녔다.
‘금수강산은 우리의 땅인데. 농민들은 일본 놈의 지주 밑에서 소작 농사를 지으며 뭇갈림으로 빼앗기고 공출로 갈취당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
몰아쉬었다. 가슴이 답답하여 터질 것만 같았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 머리 위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