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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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 봉행
  • 임순종 기자
  • 승인 2021.12.24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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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다지야 갈매기야 아아, 득량만 바다의 속울음이여”
위령제 참석한 어르신이 민간인 희생자 보도자료를 보고있다.
위령제 참석한 어르신이 민간인 희생자 보도자료를 보고있다.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문리 키조개 선창에서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지난 22일 오후 2시 열렸다.

장흥에서는 처음으로 진행되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로 한국전쟁 후 70여년만이다.

이번 위령제는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장흥유족회’, ‘장흥군 안양면 수문마을공동체’, ‘(사)장흥문화공작소’가 함께 주관하였으며, 장흥군이 주최하였다.

위령제가 봉행된 이 자리에는 정종순 장흥군수, 유상호 군의회위원장 등 군 관계자와,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사)장흥문화공작소(역사문화기록팀),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장흥동학농민혁명유족회, 수문마을 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하였다.

용왕신에게 위령제를 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무하고 해원하는 씻김굿(길닦음 소리)에 이어, 축문 · 제례 · 추도사 · 소리 등으로 이어졌고,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 짚단 혼백과 국화송이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윤호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장흥군은 진실규명신청이 저조한 지역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장흥군 구성원들은 홍보를 더욱 강화하여 미 신청 유족을 발굴하여 신청독려를 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울러 영령들을 추모할 수 있는 추모공원 부지를 확보하고 추모탑을 건립하여 다시는 이 땅에 불행한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함께 합시다”라고 전하며 희생 영령들의 영면안식을 기원하였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민간인 희생사건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빚어진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입니다. 억울한 죽음이 헛되이 잊혀지지 않도록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혀 유가족의 피맺힌 한이 풀어지기를 바라며, 오늘의 위령제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더불어 군 차원에서도 유가족 여러분의 회한을 씻어내고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지키고 회복할 수 있도록 군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흥보도연맹사건은 1950년 7월 22일, 장흥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던 45명의 보도연맹원들을 수문 앞바다에 수장시킴으로써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장흥경찰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각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을 관할 지서에 예비검속하여 수감한다.

이 가운데 수십 명이 곧이어 장흥경찰서로 이송된다.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는 예비검속이란 명목이었다.

1950년 7월 22일 밤 11시, 장흥경찰은 감금되어 있던 민간인 40여명을 안양면 수문 앞바다 선창으로 끌고 왔다. 곧이어 득량만 깊은 바다로 나가 두 사람씩 한꺼번에 새끼줄로 묶고 돌멩이를 매달아 득량만 깊은 바다 속에 수장시켰다.

위령제를 주최한 (사)장흥문화공작소의 한 관계자는 “장흥보도연맹 희생자들에게 화인처럼 찍혀있는 ‘빨갱이’란 낙인을 이제는 훌훌 벗길 때가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장흥 곳곳에서 자행되었던 이른바 적대세력(지방좌익과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진실규명 되어야 합니다. 이번 합동위령제는 좌우를 떠나 무고하게 돌아가신 모든 이들을 해원하는 씻김굿이니만큼 지난 70여년간의 회한이 씻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 받는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2006년 제58주년 4·3위령제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에서)

■ 축문(祝文)

유세차(維歲次),

신축년 십이월 이십이일에 감히 밝혀 올립니다.

오늘 수문사람들과 장흥마을사람들이 만났습니다.

여기 득량만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가신 모든 사람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수문사람들은 대대로 갯벌과 바다에서 키조개와 바지락과 낙지를 잡아 올려 겨우 살아왔습니다.

자식새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양도 양도 득량도, 득량도는 좋아도 보리밥 묵기는 싫드라”

먼 바다까지 고기 잡으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가끔 거친 풍랑을 만나 수문사람들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낙들 새벽같이 시암물을 길러다 빌고 빌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남자들 많았습니다.

땅뫼에서 당제를 지내며, 바닷가에서 선창제를 지내며 만선의 무사귀환을 빌었습니다.

1950년 7월 22일 밤 12시.

득량만 깜깜한 바다에서 돌아가신 어른들도 오늘 이곳에 모셨습니다.

수십 명 사람들이 이 선창에서 함께 묶여 바다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른바 ‘보도연맹’ 사람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날 밤 수문사람들은 깨어있었고, 떼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대덕, 용산, 안양, 관산마을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조촐하지만 여기 오셔서 함께 맑은 술 한 잔 드십시다.

안양면 수문사람들도 장흥사람, 용산면 접정사람도 장흥사람, 관산 죽청사람도 장흥사람 아니요.

용산 풍길 사람들아, 차동 사람아, 상금 사람아, 접정 사람아, 어산 사람아, 안양 사촌사람들아, 비동 사람아, 장수 사람아, 대덕 가학사람들아, 관산 죽청사람들아, 옥당 사람아, 농안 사람아

그리운 처자식 얼굴들 여기 이곳에 와 있으니

너그럽게 술 한 잔 받으십시오.

그 모든 원한과 증오, 훨훨 벗어 버리시고 그냥 술 한 잔 하십시다.

부디 서러움 떨쳐버리고 평안하소서.

상향(尙饗)

2021년 12월 22일

문충선((사)장흥문화공작소 이사)

제공 : 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사진 : 마동욱, 강기훈)

화 보

합동위령제
합동위령제
합동위령제
합동위령제
합동위령제
합동위령제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제1회 장흥군 보도연맹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추모사를 하고 있는 정종순 장흥군수
추모사를 하고 있는 정종순 장흥군수
합동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합동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짚단 혼백과 국화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러 가는 유족들의 모습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짚단 혼백과 국화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러 가는 유족들의 모습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짚단 혼백과 국화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러 가는 유족들의 모습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짚단 혼백과 국화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러 가는 유족들의 모습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짚단 혼백과 국화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러 가는 유족들의 모습
씻김굿(소리)을 따라 볏짚단 혼백과 국화를 들고 바다의 슬픈 영령들에게 헌화하러 가는 유족들의 모습
볏짚단 혼백을 들고 씻김굿을 보고 있는 유족
볏짚단 혼백을 들고 씻김굿을 보고 있는 유족
볏짚단 혼백을 들고 씻김굿을 보고 있는 유족
볏짚단 혼백을 들고 씻김굿을 보고 있는 유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장흥이야기를 읽고 있는 유족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장흥이야기를 읽고 있는 유족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장흥이야기를 읽고 있는 유족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장흥이야기를 읽고 있는 유족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장흥이야기를 읽고 있는 유족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장흥이야기를 읽고 있는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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