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장흥군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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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장흥군수〈1〉
  • 임순종 기자
  • 승인 2014.06.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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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54) 장흥군수 당선인은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근무하다 정의로운 길을 가고자 사표를 제출하고 36세의 나이로 도의원에 출마해 낙선하고 6번의 지방선거 출마, 2번의 당선과 4번의 선거 실패한 정치인으로써 또는 교수로 활동을 해오다 6·4 지방선거 장흥군수 출마 해 대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장흥군수 김 성 당선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끝없는 도전과 실패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삶’

 
◇고통과 시련의 순간들
김 당선인은 6~7대 도의원을 역임하고 2006년 4대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군수선거에 도전해 지역 여론과 지역정서를 무시하고 무모한 도전으로 쓴 고배를 마셨다. 2번째 군수선거는 2008년 12월 17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정치상황은 정권재창출을 위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통합하여 통합 민주당을 탄생했다. 김 당선인은 평생을 땀과 눈물로 청춘을 불사르고 영혼까지도 바친 정통민주당을 배반하지 않고 통합신당에 참여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아 공천을 받아 출마를 준비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의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만행으로 다른 후보에게 공천을 줘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 당선인은 “그때를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처참한 상황 이었다”고 회고한다.
2번째 장흥군수 선거는 그를 지지한 수많은 당원들과 장흥군민들의 열망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통합신당 후보에게 900여 표차로 낙선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는 “가족과 형제 친지 지인들은 물론 나를 성원해주고 지지해준 수많은 장흥군민들의 울분과 통곡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물라 삶의 목표가 좌절되고 하루하루의 삶이 무의미하고 살아야할 이유마저 없어져 버렸다”고 낙선의 충격을 말했다.
김 당선인은 2번의 군수선거 실패 후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친지와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송함에 괴로워하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신의 무능함과 나약함에 괴로워하다 양 눈의 혈관이 2번이나 터져 4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아픔 때문에 수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원인을 찾을수 없었다.
김 당선인은 정말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비가 오면 바닷가나 산에 올라가 실컷 비를 맞고 울부짖으며 수없이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하루하루를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본 지인이 비전교육을 제안해 김 당선인은 비전교육이 지금의 내 상황을 돌파하고 극복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비전교육을 받았다.
비전교육은 3단계(1단계 셀프과정, 2단계 중급과정, 3단계 고급과정)로 나누어 진행됐다. 2박 3일 동안 진행된 1단계 비전교육은 실로 신비롭고 충격적이었다.
김 당선인은 “컴컴한 어둠속에 헤매고 있는 나에게 한줄기 빛을 비추어 주는 것만 같았고, 삶의 의욕과 방향을 상실한 채 흔들리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나침판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 당선인는 2,3단계 교육을 받으며 실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내 인생의 목표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있었지만 구체적인 비전과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고 실패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새로운 삶의 희망과 열정이 가슴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 당선인은 사명선언문을 작성하고 그 사명선언문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그것을 글로 써봄으로써 다시 인생의 목표를 수립하고 삶의 의욕과 자신감을 얻었다.
2번의 군수선거 실패 후 컴컴한 터널에서 눈물 흘리고 괴로워하며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시간을 끝내고 미래의 찬란한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다시 무지개처럼 가슴속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 당선인은 비전교육 1,2,3단계를 마친 후 업저버로 비전강의를 참관한 후 학교 현장에서 비전강을 했다. 지난 6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100회 이상 비전특강과 비전강의를 5천여명이상의 청소년들에게 교육를 하며 지나온 8년 간 내가 받았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진 교훈과 가치를 가르쳐 주었으며 2차례 실패의 고통과 아픔을 준 이유는 나를 더욱더 값지고 소중한 곳에 쓰고자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 품 같은 장흥건설, 어머니 같은 장흥군수 재도전
6년을 학생들의 교육에 집중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갔고 가슴속에 항상 응어리로 남아있는 군수선거는 또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2014년 6.4지방선거 출마여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결정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다시 고민에 빠졌고 현재의 자신의 상황과 지역정서를 파악하기로 했다. 자신의 상황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 겸손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확고한 비전을 통해서 인생에서 최고의 자심감과 용기로 충만 되어있었다.
문제는 지역정서였는데 지역의 정서를 파악하기 위해 10개 읍면을 순회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후 결론을 내렸다.
6.4지방선거 3번째 장흥군수 출마결심을 하고 가족들에게 동의를 얻었지만 부인이 문제였다. 잦은 선거출마를 하다 보니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겪은 상황이여서 “마음고생하지 않고 사람눈치 안보면서 살아가면 안 되냐”며 선거출마를 고려해볼 것을 당부했다.
김 당선인은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했다가 실패했다고 포기하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릴 것 같고 영원히 후회하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고 설득하여 동의를 얻어냈다.
김 당선인은 장흥군수에 다실 출마하고자 하는 이유는 “어머니 품 같은 장흥건설, 어머니 같은 장흥군수”로 장흥을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찾고 싶고, 편안하고, 살고 싶은 그리운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굳은 신념과 확고한 비전이 군민들의 가슴을 울려 군민들은 장흥군수로 선택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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