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르포 - 한 가정을 파괴한 ‘종로여관 화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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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르포 - 한 가정을 파괴한 ‘종로여관 화재 참사’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8.01.29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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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여관 참사' 장흥 세 모녀 ‘29일 발인’

장흥 군민들 “세상에 이런 일이” 침통한 표정

지난 20일 새벽 여행을 떠났다 방화로 인해 희생당한 장흥주민 세 모녀의 발인이 사고발생 10일만인 오늘 치러진다.
유족들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기다리면서 미뤄졌던 세 모녀의 장례절차가 지난 27일 목포화장장에서 화장 후 장흥 중앙장례식장에서 3일장으로 치러 오늘 발인하게 된다.
남편이자 아빠인 이모(40)씨는 부인과 딸들의 유골을 각박한 삶을 훌훌 털고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흥 인근 바다에 뿌릴 것으로 알려졌다.
장흥군에서 살던 이씨 가족들은 겨울 방학 시즌을 맞아 중학생(14)과 초등학생(11) 두 딸을 데리고 전국 여행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씨는 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고 부인과 두딸들은 지난 15일부터 전국 각지를 여행을 했다.
여행 닷새째인 19일 서울 종로에 도착했다. 풍족하지 못한 여행경비로 하루 숙박료 1만5000원인 여관에 짐을 풀고 서울의 밤을 만끽했다.
20일 새벽 3시 8분쯤 방화범인 중국집 배달원 유모(53)씨가 여관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여관 1층 복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서울 여행을 왔다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장여관에서 투숙한 이씨의 부인과 두딸이 숨졌다.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 훼손이 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검사를 거쳐 신원을 확인해야 했다.

■풍족한 생활은 못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씨 가족들

세 모녀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씨는 고교 졸업 뒤 고향을 떠나 살다 4년전 고향에 내려와 목공일을 하면서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으로써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넉넉한 가정형편으로 풍족한 생활은 못했지만 여는 가정보다 행복함과 웃음꽃이 가득했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이웃들은 이씨 가족이 집에서 자동차로 2∼3분 떨어진 곳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80대 노부모들이 살고 계셔 수시로 둘러보며 극진한 효를 행했다고 이웃주민들이 말했다.
특히, 미혼인 형을 배려해 15년 전 아내 박모(34)씨와 혼인 신고만 하고 결혼식도 치르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주민들의 가슴을 더 짠하게 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이씨의 이웃들은 "젊은 사람들이 너무 가엽다. 남은 가족은 어떡하냐"며 슬픔을 함께 했다.
이씨의 80대 노부모가 살고 있는 마을의 한 주민은 "아빠가 친척이 하는 목공소 일을 거들면서 열심히 일해 왔다"며 "일이 없을 때는 부모님도 자주 찾아왔는데 이런 일이 닥치다니 하늘도 무심하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그 많은 여관 중 하필 왜 그곳에서 사고가 났냐"며 "시골 산다고 방학 동안 아이들 도시구경 시키려고 갔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장흥군이 지원에 나섰다. 군은 이씨에게 생계비, 연료비 등 긴급복지지원비를 6개월간 300만원을 지급하고 군청직원들이 중심이 된 한사랑모금회 등을 통한 모금도 추진하고 있다.
장흥군 관계자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직업이 있고 일정 정도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해당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며 "군이나 지역사회 차원에서 생활비나 장례 등 최대한 지원을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참사의 근원지 ‘서울장여관’
 
서울장여관은 지난 1964년 오픈한 건물로, 하룻밤 1만 5000원 한 달 45만 원에 머물 수 있어 저소득층이 많이 머무는 '달방'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여행경비 절약을 위해 여관에 투숙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 모녀는 출입구 인근 1층 105호에 있었으나 한창 깊이 잠들었을 새벽 시간이고 불길과 유독가스가 삽시간에 들이닥쳐 피할 새도 없이 참변을 당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화재로 세모녀 외에도 종로에서 퀵서비스 일을 하는 김모 씨(54) 외 2명이 눈을 감았다.
투숙객 중 불이 난 것을 보고 2층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최모(53)씨를 제외하면 부상자들도 신원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중상을 입은 상태다. 경찰은 “부상자들 역시 화상이 심각해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객실은 창고 등을 합해 총 10개로, 한 방이 6.6~10㎡(2~3평)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19일 서울에 도착했고, 서울장여관 105호를 숙소로 정해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화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희생자 6명은 모두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장여관의 비상구는 문 밖에 자물쇠가 채워져있어 열쇠 없이 열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매매 요구 불응 화풀이 참사

경찰에 따르면 방화 피의자 중국집 배달원인 방화범 유모(53)씨는 20일 새벽 2시경 술을 마신 뒤 여관에 들어가 업주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가 여관주인 김모(73)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112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유 씨에게 “성매매와 업무 방해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여관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사건을 종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출동한 경찰은 "유 씨가 술은 취했지만 말은 통했고 별다른 행패를 부리지 않고 얌전히 여관 앞에 앉아있어 이후 훈방조치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화범은 이후 택시를 타고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10ℓ를 산 뒤 오전 3시 8분경 여관 1층 복도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건물이 타고 있다”는 업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내가 불을 질렀다”고 112에 직접 신고한 방화범 유씨를 여관 인근에서 체포하고 현존건조물방화치사혐의로 21일 구속했다.
유씨는 '왜 자수를 했느냐'는 질문에 "'펑' 터지는 소리가 나서 도망가다가 나도 모르게 112 신고를 했다. 지금도 멍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씨는 정신병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서울장여관에서 방화범이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화재 사고 전 여관업주는 방화범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 여관 측은 한 매체를 통해 “성매매로 돈을 번 적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이 여관은 여관바리를 부르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고 말했다. 이 여관 건너편에 위치한 A여관 관계자는 “나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말을 아꼈다. 인근 호스텔 관계자는 “근처 일용직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여관에서 여관바리를 자주 했다. 아주 예전부터 시작됐고, 최근에도 성업 중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도 이 여관에서 4만원에 여관바리를 했다는 경험담이 수두룩했으며 글을 게시한 한 남성은 주소까지 상세히 적어 놓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계자 대처 조언

여관 화재사고와 관련하여 강진소방서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잠든 무방비상태에서 불이 나 대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유독가스는 한번 들이키면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고 콧,물 눈물이 흘러내리고 패닉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화재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어 “휘발유와 같은 기름으로 인한 불은 물로 꺼지는 게 아니므로 가능하다면 연기나 불이 못들어오게 젖은 수건 등으로 문틈을 막고 최대한 신속히 창문등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존자 증언 ‘서울장여관’

10명의 사상자를 낸 '종로 여관 방화 사건'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최모(53)씨가 화재 당시 '경보벨'도 울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20일 새벽 3시께 불이 난 것을 알아채고 서울장여관 2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구한 최씨는 모 언론사 인터뷰에서 "건물 벽에 경보벨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안 울렸다"고 밝혔다.최씨는 이날 오전 2시50분께 여관업주 김모(71·여)씨가 투숙을 위해 찾아온 어떤 남자와 말다툼을 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이후 최씨는 오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김씨가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 소리에 놀라 둘러보니 최씨가 묵고 있는 205호에 검은 연기가 가득 밀려들고 있었다.연기가 들어오고 30초 가량 지나 방 안의 전등이 모두 꺼졌다. 최씨는 이 연기가 1층에서 올라오고 있다고 판단해 무리해서 계단으로 내려가기보다는 창밖으로 뛰어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2층이라 일순 망설였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 창문 밖으로 그냥 뛰어내린 것이다. 최씨는 이 때의 충격으로 발목과 허리에 골절상을 입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최씨는 "핸드폰, 옷, 지갑 등 소지품을 못 챙기고 청바지와 여름 티셔츠 하나 입고 창문 넘어 나왔다"며 "1층에 머물던 직장 동료 박모(58)씨를 깨울 경황도 없었다"고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동료 박씨는 기도와 안면부 등에 화상을 입어 현재 한 서울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다.최씨는 청계천 한 맞춤 정장 가게에서 미싱 보조(시다) 일을 하며 이 여관에 장기투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씨는 "이 방은 한 달에 45만원인데다가 직장도 가까워서 혼자 1년 넘게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창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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