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전남농업을 빛낸 사람들 ⑦한용희(장흥 표고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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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전남농업을 빛낸 사람들 ⑦한용희(장흥 표고버섯)
  • 김채종 기자
  • 승인 2017.08.21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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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남도에서 전남농업을 빛낸 70명을 선정했다. 이중 강진 5명, 장흥 3명이 선정돼는 영광을 안았다. 강진은 김용복 영동농장 명예회장, 명동주 아트팜영농조합법인 이사, 김견식 병영주조 대표, 백정자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 대표, 김기운 백제약품주식회사 회장 등 5명이며, 장흥은 김재원 귀족호도박물관장, 한용희 전 장흥군환경산림과장, 김대일 장흥헛개영농조합 대표 등 3명이 선정됐다.
전남농업을 빛낸 사람들은 광복 이후 어려운 여건에서도 창의적인 사고와 불굴의 의지로 전남농업 발전에 기여한 농업인이다. 이에 본지는 진정한 농업인 8명을 연재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40년 표고재배 장흥이 최고 명산지 됐어요’

▲ 한용희
줄기 떼고 팔던 관행을 줄기 째 유통하도록, 글로벌 새 기준 도입
홍어삼합은 묵은 김치에 홍어회와 삶은 돼지고기를 싸서 먹는 것이다. 귀한 음식 홍어를 먹는 오랜 전통이라서 이런 ‘용어’쯤은 알아야 미식가를 자처(自處)할 수 있다. ‘정남진 삼합’이라는 말도 쾌 유명하다. 방송도 자주 타고, 장흥을 찾는 이는 거의 이걸 찾는다.
원래 장흥은 한우(韓牛)가 좋은 곳이다. 깨끗한 바다가 앞마당이니 키조개가 많이 난다. 쇠고기와 패주(貝柱)라고도 하는 키조개의 관자는 그래서 원래 좋은 재료다. 이 둘에 표고버섯을 합쳐 마케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 바로 정남진삼합이다. 성공적으로 새 전통을 만든 것이다. 정남진삼합은 홍어 삼합처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남쪽 바다에 왔으면 이쯤은 먹어야 제격이 아니겠는가?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맛나다. 권할 만하다. 홍어삼합만큼 귀한 음식이지만, 장흥에서는 비교적 ‘착한 값’에 즐길 수 있다. 표고는 원래 장흥에 많이 있던 것이 아니다. 1976년 장흥군 유치면의 기 아무개 씨가 처음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불과 40년 전에 이곳에서 시작된 작물이다. 유치 지역의 좋은 숲에서 난 나무를 잘 활용한 농사였다. 전국 표고의 20% 남짓이 장흥서 난다. 말린 표고를 기준으로 삼으면 30% 남짓이 장흥산(長興山)이다.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장흥이 ‘표고의 고장’이 됐을까나. 여기에 ‘사람’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된다.

‘정남진삼합’의 밀사 역할은 아내

 
장흥군의 한용희 전(前)환경산림과장 애기다. 호를 아예 ‘표고’라고 불려도 어울릴 정도로 몰두했다. 광주농고를 나온 농업직 공무원으로 어색하지 않은 경력 중 하나다. 자료를 보니 ‘표고버섯 재배기술 획득과 보급’이 ‘한용희와 표고의 관계’를 한 줄로 적절하게 설명한다. 90년대 들어 표고농사가 ‘좀 된다’는 예측이 줄을 잇자 장흥군은 ‘장흥표고유통공사’라는 공기업을 세운다. 산림과에서 일하던 한씨는 공사의 관리부장으로 ‘장흥표고’의 깃발을 든다.
재배하는 작물이기는 하지만 표고는 환경과 성장, 수확(채취), 선별, 건조 등 처리과정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등급이 있다. 물론 이 등급은 고급과 저급(低級)을 가르는 품질을 따지는 것이다. 본격적인 상품화나 수출을 위해서는 그 등급과 기준을 알아야 했다. 임산자원계장이던 그는 제 돈을 들여 부산 영도구의 표고수출 전문회사에 ‘밀사’를 파견했다. 15일간 부산에 머무르며 고생 끝에 그 기준을 배워온 그 사람을 통해 한씨와 장흥은 비로소 ‘표고의 모든 것’을 완성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 밀사는 한 전 과장의 아내 이을순씨였다.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일본과 홍콩, 상하이의 국제표고시장과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해외여행이 호사로 여겨지던 때라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이 ‘공부’를 아예 자비를 들여 휴가 형식으로 다녔다. 농촌진흥청의 1주일 표고 교육과정만을 거친 그가 표고 전문가가 된 내막이다.

여러 단계의 국제규격과 기준 독학

 
그때만 해도 우리 시장에서 표고를 포함한 버섯은 줄기를 잘라내고 매매됐다. 외국 시장을 보니 줄기째 팔리고 있었고 줄기가 없는 것은 아예 거래가 되지 않거나 허접한 찌꺼기 취급이었다. 인건비 비싼 일본에서 그런 식으로 수출하니 그것을 ‘고급’으로 인식한 홍콩 상하이 등의 시장도 그런 형태를 선호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장흥표고에 이를 적용했다. 인건비는 줄이고 보존성과 생산량(수율)은 10~15% 증가시킨 일석이조 전략이 됐다.
화순, 곡성, 해남 등이 장흥으로부터 표고버섯 재배기술의 협조를 받았다. 거제, 부여, 공주, 등에도 이런 노하우를 전파했다. 시장 반응도 좋아 장흥의 여러 방식이 이젠 ‘우리나라 버섯 판매의 표준’이 됐다. 이런 일은 ‘현장에 항상 답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이 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 전 과장은 ‘공직자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로 따로 애기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되레 질문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장흥표고’가 이렇게 우뚝 섰다는 점을 끝없이 자랑한다. 현직 때 손때 묻히며 만든 우드랜드를 ‘견학시켜 준다’고 다니면서도 내내 표고 애기만 했다. 표고로 ‘정남진삼합’을 완성하는데 기여한 그 얘기, 지루하진 않았다.

약력
1951년 장흥 출생
1975~2009년 장흥군 근무(환경산림과장)
1992년 장흥표고유통공사 파견(관리부장)
2005년 호남대사학과 졸업
2009년 녹조근정훈장
2010년 서부지방산림청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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