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 10 - 강진군 강진읍 이성진 목공예 명인
상태바
당신이 주인공 10 - 강진군 강진읍 이성진 목공예 명인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6.09.12 1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진 명인 작품 ‘인간의 도리 심성 품성이 작품속에 녹아’

이 명인 “선조들의 얼과 혼을 담아야 진정한 목수이자 목공예가”
17년전 교통사고 당한 아내와 함께 인고의 세월 ‘작품으로 승화’

▲ 이성진 명인
인간의 도(道)를 찾기 위해 끈임없이 고뇌하고 갈망하는 이성진(58)목공예 명인.
이 명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에게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혼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이성진(58?성진목공예)명인의 작품은 각박한 삶의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따뜻함과 행복감을 느낄수 있다.
이 명인은 독창적인 예술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작가로 알려져있다.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통소목분야 명인인증전에 출품한 ‘교잣상과 사방탁자’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 낼 만큼 사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 명인이 목공예에 관심을 보인건 16년전 직업이 목수라 집안을 분위기 있게 가꾸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에서 시작해 명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서각과 장승작품을 해오던 이 명인은 2001년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에 ‘솟대’작품을 출품해 당당하게 입선을 받았다. 이후 목공예가로써 새로운 눈을 뜨게됐다.
2013년 열린 서각전 공예작품 7점 출품했는데 100%완판됐다. 정작 준비해간 서각은 1점도 못팔았었다. 이를 통해 작가활동과 생계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고 한다. 또한 작품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이후 전국을 다니며 재야의 장인,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교류의 폭을 넓히며 많은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웠다.
 
사사받는 스승도 없이 단지 목공예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 어깨 너머로 배우고 책자와 인터넷, 작가들의 조언 등을 통해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2015년 공예대전에 ‘애기머릿장’ 작품에서 이 명인의 진가가 나타났다. 전통짜맞춤 기법 뿐 아니라 통일염원 의미를 부여한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 조각 등이 호평을 받아 통일부장관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예술가들은 배고프다는 말이 있듯이 이 명인도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위기였던 IMF위기 때 운영하던 잡화상가게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99년 아내가 오토바이 연습 도중 사고를 당하는 불행이 겹쳤다.
아내는 사고여파로 머리를 다쳐 뇌병변장애를 갖게 됐다. 사고 이후 17년째 아내와 함께 살며 건강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생활이 힘들다보니 삶의 의욕저하 되면서 갱년기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가정에 유일한 버팀목인 자신이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병원에도 다니며 이겨내고 있다.
이 명인은 아내에 대해 남에게 해꼬지 않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고 후 25일만에 깨어난 아내를 보살피기 시작한 이후 어려움이 잇달았지만 착한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차마 병원에 맡겨놓을 수 없었다는 이 명인.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편히 발뻗고 잘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때문이다.
이 명인은 사업을 접고 의욕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지만 논과 농기계구입에 큰 돈이 들어가면서 오히려 소득은 늘지 않고 빚만 늘어나 결국 논이 경매로 넘어가고 살던 집마저 가압류되는 상황까지 몰렸다.
아내는 아프고 하는 일을 풀리지 않아 괴롭던 2006년 어느날 남원에 있는 산에 올라가 죽음을 생각했다.
마침 산에서 만난 스님이 “사람이 죽을려고 하는게 목적이 아닌데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면 되겠나? 당신이 지금부터라도 세상의 주인공 될 수 있는데...” 라며 만류하자 마음을 거두고 스님이 기거하는 절에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절에서 인간본성과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고 스님으로부터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뜻의 ‘성진(참별)’이라는 이름도 받았다. 또 나무처럼 살다가 벼처럼 고개를 숙이라는 뜻을 가진 ‘목(木)화(禾)’라는 아호까지 선사받았다. 또 산에서 있는 동안 다른 스님으로부터 ‘초정’, ‘자무진’이라는 아호도 선사받고 마음을 추슬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잡고 목수일을 다니며 틈틈이 공예공부를 해가며 열심히 생활하자 먹구름이 걷히듯 근심걱정도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지인의 공방을 빌려 작품활동을 하며 공예명인의 꿈을 꾸고 공예가로서 작품활동을 하는 과정에 무시당하는 수모도 여러차례 있었지만 감수했다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