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 9 -장흥 회진면 블루원농장 이승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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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인공 9 -장흥 회진면 블루원농장 이승화 대표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6.09.0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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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화 대표 “귀농귀촌 성공은 마을사람들 가슴속으로 들어가라”

6년만에 6천평규모 블루베리 농장 일궈 / 이 대표 “성공비결은 아내와 함께여서”

 
6천평 규모의 농장에서 막바지 블루베리 생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회진면 덕산마을에 위치한 블루원농장 이승화(59)·김순분(55) 부부.
▲ 이승화 대표
블루원농장에서 생산되는 블루베리는 무 농약인증과 우수농산물관리인증을 받은 친환경 제품이다.
시골에 정착한 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큰 농장으로 키워낸 데다 전남 블루베리생산자연합회장, 장흥군 귀농인연합회장 겸 전남귀농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자신이 농장을 운영하면서 얻는 지식들을 회원들과 나누면서 농업인대학이나 귀농귀촌프로그램에 강사로 나가 다른 귀농인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상도 부산이 고향인 이 회장은 처음부터 덕산마을에 귀농을 작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6년전 건강이 좋지 않아 그동안 해오던 건설업을 접고 회진면에 840평의 땅을 매입 후 귀촌했다.
회진면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생활을 하면서 20여년 동안 전국에 사업이나 낚시를 다니며 눈여겨봐둔 곳이라고 한다.
 
6년전 귀촌을 결심한 이 회장은 아내 몰래 시골로 전입신고를 했다. 결국 들통나 아내 김순분씨는 4개월동안 안내려오겠다고 버티다 밥도 못하고 계산도 못하는 남편에 대한 걱정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 회장은 “성격상 밖에 큰일은 잘하지만 옆에 집사람 없으면 헛방이다” 며 “서울생활에 적응됐던 사람인데 나를 따라 시골에 내려와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다”고 미소를 짓는다.
이 회장 부부는 처음엔 많이 다투기도 했다. 이 회장은 손님이 만원어치 사가면 1개를 더 챙겨줄 정도로 퍼주는 스타일. 아내인 김씨는 정확하게 거래하는 스타일로 성공하게 된 것을 아내에게 공을 돌렸다.
아내 김 씨는 남편의 방식이 결코 퍼주기만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시골생활 3년 차에 알게 되었다며 남편 공이 더 크다고 말했다.
처음엔 귀농정보도 전혀 없고 생각도 안했지만 시골에 내려와 휴양과 낚시를 즐기다보니 노는 것도 지겨워졌다. 좀이 쑤셔 농사라도 지어볼 생각을 하던 참에 딸이 블루베리를 추천해주어 블루베리와 인연이 됐다고 한다.
 
처음에 800평으로 시작했다 지금의 큰 농장으로 가꾸게 된데는 대충해서는 안되고 끝을 보고야마는 이 회장의 성격도 한몫했다.
블루베리를 시작해 불철주야 열심히 하고 깔끔하게 운영한다는 소문에 마을주민들은 물론 군청 공무원들도 관심을 갖고 찾아오게 됐었다. 공무원들을 통해 블루베리에 필요한 사업지원이나 교육, 시범포를 통한 연구 등에 도움을 받았다.
몰라선 못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블루베리 전남농업마이스터대학 2년동안 공부했는가 하면 한국농촌관광대학(충북영동)에도 배우러 다니고 순천대 최고농업경영자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한번 마음 먹으면 끝장을 보는 이 회장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이 회장 부부의 시골생활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생전 농사라곤 모르던 이 회장이 귀농 2년차에 농장을 키워가야 하는 데 자금압박을 받았다.
몸도 좋지 않고 자금사정이 힘들어지자 시골생활을 접어야하나 고민도 했다. 한번 도시로 나가면 절대 못올 것 같다는 생각에 여기서 끝을 보자고 생각하고 버텼다.
마침 운도 따랐다. 당시 묘목 4천주가량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던 이 회장. 그러던 중 평소 주문이 없는 겨울에 대구에서 묘목 상담전화가 들어왔다. 전화를 통해 사진을 보내달라는 손님을 설득 실물을 직접 보고 살 것을 권유했다.
바다구경과 함께 감성돔회를 대접하겠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마침 전화를 걸었던 부부가 여행겸 내려와 묘목 500주를 주문했다.
 
당시 블루베리 묘목이 비싸던 때였는데 다소 가격을 낮춰서 1만원에 팔았다. 또 방문했던 손님의 소개 등으로 주문이 들어오면서 4천여주 묘목을 다 팔았다.
자금압박으로부터의 해방도 잠시 그 이듬해 강풍을 동반한 볼라벤태풍에 350평 하우스가 날아가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충격에 놀라 공황증을 겪었는데 2년 동안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보면 시행착오도 많았다는 이 회장은 “누구든 시골에 정착해 살려면 무엇보다 지역사람이 돼야 한다. 마을사람들 가슴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며 “그런 마음으로 하면 당신 집 앞에 양파나 마늘, 미역이 놓이게 되어있다” 며 정착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회장은 “귀농은 혼자서는 못한다. 시골에 정착하려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의 동의가 최우선돼야 한다”며 “설득 시켜야겠지만 아내가 원하는 경우가 제일 좋다” 고 귀뜸했다.
서울생활의 편리함을 다 있고 현실에 부딪치며 “나는 농부다” 라는 마음을 가지니까 맘이 정말 편했다고 한다.
서울에선 카리스마 있기로 유명했던 이 회장이지만 마을사람들과의 벽을 허물어야겠다는 생각에 만나는 사람은 무조건 인사부터 했다.
하루에 오토바이를 타고 열 번 이상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인사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아는 척 인사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자재 등 공동구매, 공동선별, 공동출하로 정착에 기여 했다.
연합회나 조합일에 회장을 맡으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국산 및 수입산 블루베리 자재 판매권을 전남도 블루베리생산자연합회에 넘겼다. 이는 소액회비가 전부인 블루베리생산자연합회 성공운영에 디딤돌이 됐다. 처음엔 극히 일부의 회원들만 호응했지만 연합회 운영이 잘 되자 회원들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조합원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남도베리 협동조합 유통사업단장도 금년 3월부터 맡고 있는 가운데 첫해에 50톤이라는 많은 양의 블루베리를 수확 판매해 주변에서 깜짝 놀랐게 만들었다.
이 회장은 “앞으로 블루베리 체험농장과 잉여물량 소비에 도움이 되는 가공사업도 준비중이다”며 “회진 등 남해안은 바람이 센 곳이라 농장에 바람막이시설이 필요한데 개별농가에서 하기는 힘들어 행정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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