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바로알기 - 강진군 신전면 영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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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바로알기 - 강진군 신전면 영수마을
  • 김채종 기자
  • 승인 2016.08.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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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마을 자자일촌형…모두 형제처럼 사이좋게

크고 작은 사고가 없는 주작산 아래 청정마을
김부재 이장 “학자 배출 많아 선생촌이라 불려”

▲ 김용식씨댁에서 동네주민들이 마늘작업
올여름은 어느해 보다도 가뭄이 한달 넘게 가고 있다.
농촌형 강진은 가뭄이 장기가 가고 기온이 30도가 넘어버리면 논농사, 밭농사에 상당히 치명타를 안긴다.
여기저기 밭작물이 오랜가뭄에 시들어 가고 있다. 지하수가 있는 곳은 그래도 밭에 물을 대는 물줄기가 보이지만 지하수가 없는 곳은 경운기에 물을 실어서 간신히 물을 작물에 주는 것도 보이지만 시골에 남편들은 진작 돌아가시고 나이드신 어머니들께서는 그냥 하늘에 밭작물을 맡기는 형편이다.
오늘도 일기예보에서는 무심하게도 비는 온다는 말은 없고 기온도 34~5도를 넘겠다는 무거운 말만 흘러 나온다.
▲ 영수마을회관
오전 10시쯤 마을 서쪽으로는 해남군 두륜산, 북쪽으로는 신전의 명산인 주작산이 감싸안고 있어 온화하고 정경이 뛰어난 곳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해남군과 경계지역인 강진군 신전면 영수마을 찾았다. 들녘에는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는 삭막함 그대로였다. 혹시나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이 계시나 문을 열어 보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오랜기간 나오지 않았는지 마을회관내부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이장님께서는 읍에 나가 일보고 있다고 해서 마을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침 창고안에서 아낙네 6명이 김용식씨댁 마늘을 심기위한 준비작업 하나인 마늘 하나나 쪼개는 작업을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면서 하고 있었다.
▲ 동네 아낙네
영수마을은 오래전부터 여자 손이 많이 들어가는 밭작물 중 소득이 그나마 좋은 마늘농사를 지어 왔다고 한다. 오늘 작업하고 있는 이 물량으로 4천평정도 심을 것이라고 한다.
이분들은 인접 해남군이나 강진군 면단위에서 중매로 이곳에 시집왔다고 한다.
처녀시절에는 동네에서 연애하는 것은 엄두도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처음 마을을 형성할 때 자자일촌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친인척으로 형성되어 유교사상이 엄한 우리나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영수마을도 김해김씨가 최초 터를 잡고 형성된 마을이다.
작업중인 이 여섯 아낙네들도 모두 남편의 성씨가 김해김씨란다.
현재 이 마을은 14개 성씨가 살고 있는데 주민중 김해김씨가 60% 살고 나머지는 40%는 13개성씨가 살고 있다.
영수마을은 신전면소재지에서 지방도 813호선을 따라 남창쪽으로 신전초등학교와 백암주유소를 거쳐 어관승강장을 바로 지나면 우측으로 영수마을 진입로가 있다. 동쪽으로는 건나등을 넘어서 용화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해남군 북일면 운전리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북일면 용일리와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같은 법정리인 어관마을이 인접해 있다.
강진 마을사 자료를 보면 문헌상 영수마을의 지명이 처음 나온 것은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으로 백도면의 21개 마을중 한마을로 ‘영수(永水)’란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영수마을의 설촌이 그렇게 빠르진 않음을 알 수 있는데 본 마을의 최초 입촌 성씨는 김해김씨로 알려져 있다.
1914년 일정(日政)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근인 어관마을과 병합하여 영관리가 되고 1983년 2월15일 신전면으로 분면되기전까지 도암면 소속이 된다. 그 후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분구가 이루어져 영관리 2구로 행정편제가 이루어지고 이시기에 마을지명도 “永水”에서 현재의 지명인 ‘永守’로 바뀌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영수마을이 신전면 소재지가 6km, 해남군 북일면 소재지가 3km 지점으로 시장(좌일장), 교육 등 주생활권이 북일면쪽에 치우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영수 마을은 행정상 총 34가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는 남자 27명, 여자 34명을 포함한 총6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재 김부재이장의 말에 의하면 폐가가 몇 군데 있고 노령화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분들도 몇 있다고 한다.
“귀농한 세대는 한세대인데 외부로 일 다니는지 얼굴보기가 어럽다”고 이장은 말했다.
“영수마을은 자자일촌형 마을로 형성되어서 모두 형제처럼 사이좋게, 농사철에는 서로돕는 품앗이로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없는 주작산아래 청정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명산인 주작산아래 명당에 마을이 형성되어서 그런지 예부터 학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 교육자가 많이 배출되어 선생촌이라 부를 정도로 알려진 마을이다”고 김부재이장은 마을을 자랑했다.
특히 이곳은 촌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동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마을 골목길을 중심으로 신전면 영수마을과 해남군 북일면 용수마을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최초 행정구역을 나눌 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전해오는 구전이나 문헌상에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없다.
일반적으로 하천을 기준으로 하거나 촌락단위로 들녁 중앙을 경계선으로 하거나 작은 능선이나 산 능선을 기준으로 하는데 강진군 신전면 영수마을과 해남군 북일면 용수마을은 같은 촌락으로 형성된 마을인데 이런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아리송한 곳이다.
더 아이러니컬 한 것은 도로 넘어(북일면 용수마을)에 3가구가 신전면 영수마을 행정구역으로 편성 되어있다.
▲ 김부재 이장
김부재이장은 “마을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2개군의 행정구역 마을이 되어 있어서 마을 지원사업이나 복지시설 등에서 인접 용수마을이 앞서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영수마을은 강진군에서 소외받은 마을처럼 느끼져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해남 용수마을은 상수도사업이 진작 진행되었는데 강진 영수마을은 언제 진행할지 계획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영수마을에는 초등학생은 3명이 신전초등학교에 재학중이고 1명이 도암중학교에 재학중이다.

▲ 관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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