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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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2
  • 장강뉴스
  • 승인 2025.04.2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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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린시절

10

운현은 새 학기가 되자 4학년이 되었다. 소학교에 몇 개월 다니지 않았는데 자신의 나이에 맞은 학년으로 건너뛰었다. 학교가 개교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니는 학생의 수가 적었기에 적당히 해결되었다. 사실 실력은 다른 학생들에 비교해 월등했다. 담임인 조민선 선생의 적극적인 지도의 주선 덕택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되었던 행운이었다.

‘단번에 두 학년을 올라가다니.’

운현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즐겁고 신명났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산등성에 피었던 두견화가 지면서 철쭉꽃이 피어났다. 봄은 시나브로 무르익으며 지나갔다.

‘내일은 시험을 본다고 했는데.’

운현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예습과 복습을 철저하게 했다. 공책과 연필이 없으므로 섶나무가지를 꺾어 땅바닥에 글씨를 썼다. 꼴을 베거나 쇠죽을 쓰면서도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생각했다. 밤에는 소쩍새의 구슬픈 노랫소리를 들으며 호롱불 밑에서 선생님이 주었던 삼국지 책을 읽었다.

‘시험을 보는 날이니까 지각해서는 안 되지.’

운현은 책보를 등에 둘러매고 뛰어서 학교에 갔다.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여 자신의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선생님이 들어왔다. 출석을 불렀다. 두 명이 결석했다.

“오늘은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다. 공부 많이 해왔지?”

담임선생은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홍운현 너는 특별히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 2학년이 4학년이 되었으니.”

담임선생은 운현에게 시험지를 주며 당부했다.

“알겠습니다.”

운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평상시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했다. 틈만 나면 교과서를 보고 외웠다. 다른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답을 써내려갔다. 쉬웠다. 남들보다 일찍 시험지를 제출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루의 학교생활이 즐거워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하교시간이 되어 학교가 파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망태를 들고 나가 꼴을 베어왔다. 쇠죽을 쑤어 소에게 주었다.

다음 날 조회시간이었다.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어제 시험을 본 결과 한 문제 틀린 홍운현이 일등을 했다. 다른 학생들도 더욱 분발하도록!”

담임선생은 조회를 하면서 운현을 추켜세웠다.

“일본말 공부가 형편없다. 천황패하께 충성하려면 일본어를 잘해야지.”

담임선생은 일본 사람이었다. 회초리로 때리듯이 꾸짖었다. 일등 국민이 되려면 일본말을 잘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침략자 놈들…’

운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 숙였다. 아침마다 천황패하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놓고도 반성하지 않고 억지 쓰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뒤틀렸다. 인간을 신격화하고 있는 것도 귀에 거슬렸다.

“천황패하님께서는 미개국인 조선을 도와주려고 갖은 애를 쓰시고 계신다.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 되는 거야.”

학생들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상대방의 표정을 살폈다.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의 나라를 침략했으면서 약소국을 도와준다고? 선한 행동을 한 것처럼 정당하다고? 잘못을 미화시켜 완전한 속국으로 만들려고?’

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침략자를 몰아내고 언젠가는 독립을 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움켜쥐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천황폐하에게 충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서다.’

운현은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닫고 창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덮고 있었다.

11

5학년 때였다.

담임선생은 조 민선선생님이 맡았다.

어느날이었다.

학교가 파했다.

운현은 교실청소를 마쳤다. 책보를 둘러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홍운현!”

조 민선은 교무실에서 나오면 큰 소리로 불렀다.

“예!”

운현은 깜짝 놀랐다.

“나좀 보자!”

“…….”

운현은 장승처럼 서있었다.

“선생님은 내일 학교에 못 나온다.”

“왜요?”

“내일 학교에서 신사참배를 시킬 거야.”

“…….”

“조선 사람이 신사참배를 하면 안 되지.”

“…….”

“너는 어떻게 할 거냐?”

“저도 학교에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영혼까지 빼앗겨서는 안 되니까.”

“땅덩이는 잠시 빼앗길 수 있지만 넋은 내줄 수 없지요.”

“그래야지 그러고 말고. 이제 어른이 되었네.”

“…….”

“신사에 불을 질러버려야 하는데. 언젠가는….”

“불을 질러요?”

“불테워 없에 버려야 할 것이니까.”

“불테워 버려요.”

“알았으니 어서 가거라 다음에 이야기 하자!”

조 민선은 뒤를 돌아보며 쫓아버렸다.

운현은 결혼을 할쯤에 신사가 불에는 걸 보았다. 조민선 선생님이 붙잡혀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다음주계속〉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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