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⑤ 강진군 군동면 중산마을 오점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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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인공⑤ 강진군 군동면 중산마을 오점수씨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6.06.26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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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친환경농법 고집하는 친환경유기농 오점수 회장

오 회장 “농약 걱정없는 웰빙 쌀을 생산한다는 일념으로”

▲ 오점수 씨
직장을 퇴직한 후에도 동네노인회장, 개발위원장을 하는가 하면 물론 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점수(77) 군동면 자치위원장 겸 군동면 친환경유기농회장을 만났다.
20년이 넘게 친환경유기농으로 쌀을 재배해와 친환경농업 전도사로 통하는 오 회장은 박사나 공무원이 많은 중산마을에서도 자식들을 제일 잘 키운 집으로 소문났다.
카이스트대학 교수인 큰 아들과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계열 백화점 부장으로 있는 둘째아들, 서울대의대교수인 셋째아들 등 아들 삼형제가 모두 출중한 실력을 겸비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과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욕심없이 살았다는 오 회장. “욕심은 자기를 잡는 것이다. 남도 이롭게 해줄 있는 욕심없는 사람은 어디가서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음은 얼굴로 나타나는 것인가? 옆집아저씨처럼 편안한 인상이다.
마을주민들과도 잘 나누고 산다는 오 회장 부부는 기자와 만나던 날도 제사라며 집에서 준비한 떡과 수박을 마을회관에 돌리고 있었다.
중산마을에서 친환경유기농으로 벼를 재배하는 오 회장은 요즘은 우렁이를 넣어 하는 우렁이제초작업과 논둑베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도 1.8ha(27마지기)의 논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 군동농협 근무시절부터 친환경농업에 관심을 갖고 뛰어든 이후 20여년째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는 오 회장. 좋고 나쁘고를 떠나 먹거리는 친환경적으로 가야된다는 생각에 친환경유기농재배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젋어서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하다 쓰러졌던 기억이 친환경방식에 관심을 더 갖게 됐다. 군동농협근무 당시 지도부장을 맡아 친환경농법을 지도, 교육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강진군과 군동면 친환경유기농협회 창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초대 강진군 친환경유기농회 회장을 맡아 활동해왔으며 현재도 군동면 친환경유기농회장직을 맡고 있다. 농협퇴직후에도 내 일 계속하자는 생각에 친환경농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
오 회장은 친환경유기농을 하다보니 친환경유기농 급식이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도 급식이 제공됐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정부수매에 친환경유기농쌀 수매가 배정됐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 잘 되기 위해서는 옆에서나 뒤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는 법. 직장을 다니고 자식들을 키우고, 농사를 짓는 오회장 곁에는 늘 든든한 내조자 변정자(71)여사가 있었다.
오 회장 부부가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은 1969년. 서른살이 된 오 회장이 장흥 용산면 관지마을이 고향인 변 여사를 중매로 만났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던 아버님과 어머님 수술비로 가지고 있던 재산을 처분하면서 가난은 결혼한 두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 시어머니는 수술에도 불구하고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데다 몇 년 뒤에는 시할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지시게 됐다. 3남1녀의 자식들을 낳아 기르면서 동시에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수발과 눈역할에 또 사별후 혼자 계신 숙부님까지 집에 모셨다고 하니... 어린자식들까지 놔두고 논으로 밭으로 일갔다오면 굿도 장도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밤이 돼서야 어르신 수발에 청소며 밥하고 빨래하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손으로 하는 농사일에다 손빨래하고 불을 때 밥해먹던 시절이었으니 그 고단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자신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나머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병을 앓고 있는 부모님마저도 모시지 않으려 요양원으로 보냈다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 세태와 비교됐다. 그런 어려운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느냐고 물었다. 변 여사는“시어머니나 시할머니 두 분 다 마음씨는 좋으셔서 ‘줄 것 없고 사줄 것도 없고 너보면 미안하다, 너 잘한다, 너 알아서 해라, 맛나다’고 믿고 칭찬해줘 딴 생각은 안해봤다”고 미소지으며 얘기한다. “가난해서 성가시지 사람은 다들 좋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자식들도 착하게 잘 자라줘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부부의 자녀교육에 대해 오 회장은 “세상살이를 부모 위해서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니 농사든 공부든 하려면 열심히 하라고 했을뿐”이라며 “알아서 스스로 할 것을 당부한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생은 욕심부리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오 회장은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하면 희망이 없네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앞만 보는 게 희망이 아니다. 앞만 보면 고달프니 뒷도 보고 사는 게 좋은 것”이라고 조언한다.
흙탕물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화사하게 꽃을 피워낸 연꽃같은 인생을 살아온 오 회장과 변 여사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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