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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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
  • 장강뉴스
  • 승인 2025.02.1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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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하늘과 땅1

1 상량식

1

1974년 어느 봄날의 이침이었다.

태양은 민둥한 제암산 산마루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빛줄기가 빨랫줄처럼 뻗어 뒷동산 산등성이에 걸쳤다. 어느새 마을로 내려왔다. 찬란한 햇빛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뚫고 힘차게 내려와 푼푼하게 흩뿌려댔다. 산의 계곡에 숨어있던 어둠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어 흔적도 없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햇볕이 양지편 마을을 솜이불처럼 덮었다. 동네 앞 팽나무 우듬지에 앉아있던 멧비둘기는 위골의 문안에 있는 수리봉의 독수리부리를 향해 날아갔다. 남산에서는 장끼가 간밤에 잠을 설쳤는지 날개를 치며 하품해댔다. 까투리는 꺼병이를 몰고 밭으로 마실 나와 돌아다녔다. 산토끼는 뒷동산 자드락밭에서 보리 잎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참새들은 마을 앞 대밭에서 조잘거리며 시끄럽게 아침인사를 해댔다. 산골에 땅거미가 걷히고 여명이 밝아 오니 새날의 하루가 시작 되었다. 산새들도 아침을 반기며 즐거워했다.

한길의 가로수인 벚나무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명지바람이 꽃향기를 싣고 와 마을에 흩뿌려댔다.

“까악, 까악, 까아악….”

산 까치는 뒤란의 텃밭에 있는 감나무 가지에 앉아 태양을 바라보며 반갑게 아침인사를 했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운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집터서리를 돌아다녔다. 까치의 아침인사를 받으며 하품을 했다. 목재와 자투리의 나무들과 지스러기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있어 어수선했다.

‘자식들이 돈이나 넉넉히 보내주었으면….’

운현은 돈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지난 밤 몸을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지새웠다. 집을 짓느라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부족한 목재를 구하고 돈을 맞추어야 했다. 집짓는 비용을 생각하면 머리가 벌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가 되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돈뭉치를 가지고 올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사량식을 하는 날이지.”

운현은 괜히 신경질이 나 혼자서 두런거렸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기둥사이를 돌아다니며 맴돌았다. 집터의 한가운데에 서서 대들보와 들도리를 쳐다보았다. 도리 사이로 바다 같은 파란 하늘이 보였다. 어제는 잿빛구름으로 가득했었다. 밤새워 쓸고 닦고 하여 청소를 해 놓았는지 구름 한 점 없이 끼끗했다.

‘어떻게 잘 되겠지. 걱정하면 무엇해. 새 둥지를 만들어서 아들, 손자, 온가족이 오순도순….’

운현은 새로 지은 보금자리에서 식구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며 빙긋이 웃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목표 중 하나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오직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안정만을 추구하며 살아왔었다. 그리고 자식들의 교육에 모든 정력과 정성을 쏟아 부었다.

‘나 같은 사람도 새로운 집을 마련할 수 있구나. 그것은….’

운현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눈앞에서 아른거려 어수선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가슴이 답답하여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보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눈가에는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목숨을 부지하려는 생존이란 괴로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행복했는지도 몰랐다. 민초의 무지렁이의 삶으로 자닝스럽게 시달렸었다.

‘집안이 평화롭고 식구들이 행복하면….’

운현은 가족들의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미친 사람처럼 빙긋이 웃었다. 자신의 삶의 목표는 자식들의 교육과 집안을 위한 헌신이었다. 보람은 하나 도 잡지 못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혼자서 울고 웃으며 행복에 젖어들었다.

‘고향을 등지고 처가 동네의 오두막으로 이사 온 지 몇 해인가?’

운현은 엊그제 같은 지난날의 궤적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만지작거렸다. 집이 작아 까대기를 달아내어 외양간과 방을 만들었다. 그래도 비좁았다. 일곱 남매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다. 어쨌든 자식 둘은 홍역 하다가 날렸지만 다른 탈은 없었다. 자신이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기만 했다.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여기며 감사했다.

‘엊그제 샐그러져 넘어지려고 하는 지궁스러운 토담집을 헐어버리고….’

운현은 비스듬히 기울어진 오두막을 그려보았다. 배고픔에 몸부림치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또 갑자기 서러워졌다. 손등으로 축축하게 젖어있는 눈시울을 쓱쓱 문질렀다.

‘비렁뱅이들이 살아가는 움막이라도 정들었던 보금자리였는데.’

운현은 눈동자 속에 박혀있는 살아왔던 초가집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허름한 오두막은 각설이들의 움막처럼 궁상스러웠다. 힘을 잃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누워있었다. 장마가 지면 여기저기서 비가 샜다. 들도리와 서까래가 부러져 장대로 받쳤다. 받침대에 의지한 지궁스러운 집이었다. 언제 쓰러질지 몰라 다급해졌다. 어쩔 수 없이 서둘러 헐어버려야 되었다. 집터서리를 골라 정리했다. 달구질하여 집터다지기를 했다.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을 세웠다. 들도리를 얹었다. 대들보를 놓았다. 마룻보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마룻대공을 세웠다. 오늘 그 위에 마룻도리를 올려야 되었다. 용마루를 얹게 될 종대공 위에 상량을 놓으면 집의 뼈대는 갖추어졌다. 그리고 마룻대에 서까래를 걸쳤다. 나뭇개비나 수수깡이나 섶나무 등으로 엮어 산자발도 깔아야 했다. 산자 위에 차지게 이겨놓은 알매를 얹을 것이다. 알매흙 위에 잡목, 지저깨비, 나무토막, 헌 재목 등으로 적심을 박아 물매를 잡았다. 그리고 기와를 얹으면 기와집이 되었다. 이엉으로 덮으면 초가집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상량식을 하는 날이다.’

운현은 막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며 가슴을 활짝 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마다 먼동이 트면 집터서리를 맴돌며 행복에 젖어들었다. 세상을 모두 소유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같이 기쁜 날…!’

운현은 슬픔과 기쁨이 아우러져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마당 앞 구석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집 안이 봄빛으로 가득한 행복한 아침이었다. 멧비둘기는 마당가의 사립문 옆에 있는 오동나무 우듬지에 앉아서 구구거리며 인사했다. 집 앞 대밭에서는 산새들이 푸덕거리며 날아갔다.

2

고샅에 동네 사람 서너 명이 생글거리며 가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군침을 삼켰다.

“오늘 나주양반 집에 잔치가 있다고?”

나주양반은 홍운현의 택호였다.

“무슨 잔치?”

“새로 지은 집에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을 한다고 하던데.”

“엊그제 달구로 집터다지기를 했는데. 벌써 마룻도리를 올린다고. 남의 집 일이라 빠르네.”

그는 동네의 몇몇 젊은 사람들과 함께 달구를 들었다 놓으며 집터다지기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구질하던 일이 떠올랐다. 막걸리 몇 잔을 걸치고 거나하게 취해 달구놀이를 하니 힘들지 않았다. 재미있게 즐기며 놀았다. 이웃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시기심은 어디로 가고 한없이 좋았다.

“여러 해 동안 집을 지으려고 목제를 모아 준비했으니까….”

“가을이 되면 배나무골 산에서 서까래가 될 만 한 소나무를 베어 나르던데 집을 지으려고 했구나.”

“둘째아들 집을 지어 분가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남의 일이라 쉽게 말하는데 어려움도 많았겠지.”

“저지난해에는 서울에다 집을 사서 아들 손자들을 보냈지 않았어?”

“큰아들이 서울 법원으로 발령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손자들 교육시키려고 집 산 것 아니고?”

“어쩌면 이사 갈 지 누가 알아?”

“이사는 큰 아들이 가겠지.”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지.”

“항상 죽는 시늉을 하던데 알부자가 분명해.”

“술도 마시지 않고 성질이 꼿꼿하고 고약해. 꼽꼽쟁이고. 송곳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사람이야.”

“죽는 흉내를 낸 것이 아니라 짠돌이 노릇하면서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았지.”

“백여우 노릇도 했어.”

“그런 소리하지 마. 남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괴롭히지는 않았어.”

“나주양반 생각은 남들과 달라. 꼽꼽하기는 해도 허튼 데에 낭비하지 않거든. 양심이 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남에게 못할 짓은 하지 않고 살았어.”

“십여 년 전부터 자기 집을 새로 짓겠다고 계획을 세워 준비해왔으니까.”

“그래서 몇 년에는 시암치골에서 산판까지 했구나. 기둥으로 쓸 나무를 베려고.”

“그때에 제재소에서 집을 지을 기둥과 도리를 만들어 놓았어.”

“아들들이 공무원을 셋이나 하니까 돈 걱정은 없을 것이고….”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여유가 있으면 집 단장도 해야지.”

동네사람들은 고샅을 걸어가면서 한 마디씩 하며 즐겼다.

“나주양반은 이만하면 빈손으로 처가 동네인 양지편으로 이사 와서 성공했어.”

“일본강점기에 이사 와서 지주인 일본사람에게 빈재들 저수지 밑 소작논 너마지기 얻어 십여 명이 되는 식구들이 어렵게 입에 풀칠을 했었는데.”

“장돌뱅이가 되어 별의별 장사는 안했고.”

“처음에는 놋갓점을 한 처가에서 유기그릇을 받아 팔아서 정말 어렵게 살았어.”

“그러다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발동기를 가져와….”

“발동기 다루는 기술은 어떻게 배웠는지 몰라.”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니….”

“여름에는 보리탈곡하고 겨울에는 정미해서 그 삯으로 살아가고 남아 살림 밑천이 되었어.”

“보통 사람과 달라. 색갈이 장리 빚을 내서 자식들 교육을 시킨 사람이야. 우리 같으면 배불리 먹고 살았을 텐데….”

“자식들 잘못하면 무서웠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걸 보면 맷손이 장난이 아니야.”

누군가 혀를 널름거렸다.

“계산이 바르고 빨라. 백여우 노릇한 것 같았는데 자식들 교육은 잘 시켰어.”

“동네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면 도와주었지 남을 속이거나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았어. 틀림없고 정직한 사람이야.”

“남에게 못할 일 하지 않고 누구에게든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야. 그것이 싫다는 거지. 속아주어야 하는데….”

“그래서 아들 다섯에 딸 둘, 일곱 남매를 잘 길렀어.”

“첫째 아들은 법대를 나와 법원에 근무하고 둘째 아들은 새 집을 분가시켰고 딸 둘은 결혼해 잘 살고 있고 셋째 아들은 고등학교를 나와 공무원시험을 보겠다고 공부하고 넷째 아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다섯째 아들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우체국에 근무하다가 서울로 갔지?”

“자식들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비싼 색갈이 장리 빚을 내서 뒷바라지한 보람 있네.”

“뒷동산 백여우 노릇을 하다가도 돈 쓸 때에는 배짱도 좋아!”

“진짜 통이 커. 발동기로 보리타작하여 받은 삯의 보리를 화물차를 불러 와 가득 싣고 장에 내다 팔아서 큰아들 대학학자금을 냈으니까. 나 같으면 그 돈으로 큰 부자가 될 텐데.”

“큰아들이 잘 되면 동생들을 도와 집안이 번성할 거라고 하지 않던가.”

“생각 차이야.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엉뚱한 짓을 한다고 욕했지. 돈이 없으면서 색갈이 내어 자식들 교육시킨다고. 대학에 다닌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라며 손가락질 했지.”

“자식들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잘 자라주니 궁합이 맞은 거지.”

“나주양반이 나에게 무어라고 한 줄 알아?”

“무어라고 했는데?”

“머릿속에 든 지식은 남이 빼앗아 갈 수도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는 큰 재산이라고 했어. 나도 자식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그 말이 맞아. 아는 것이 힘이라고. 모르면 남에게 당해.”

“그래서 나주양반은 책 보기를 좋아했구나. 삼국지를 옆에 놔두고 틈만 나면 소리 내어 읽던데.”

“삼국지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어. 얼마나 읽었는지 달달 외우더라고.”

“나주양반이 자식들 교육시키는 것 봐. 잡도리 할 때에는 무서워. 잘못하면 세워놓고 매로 종아리를 때리는 걸 보면….”

“부모의 행동을 보고 자식이 배운다며 행동거지를 여간 조심한 것이 아니야.”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는가?”

“화투치는 것 봤어?”

“못 봤지.”

“애들이 놀고 있으면 꾸짖는 것 못 봤어? 자기 자식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야.”

“무어라고 하던데?”

“인간 못 된 놈은 짐승만도 못하다고. 사람이 되라고.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꼭 자기 자식들 꾸짖듯이 잡도리해.”

동네사람들은 운현의 집으로 가면서 평상시에 생활하면서 보고 들었던 언행을 시샘 반 부러움 반에 질투를 석어가면서 한 마디씩 되새김질하며 즐겼다. 다른 사람과는 사뭇 달랐다. 바른 방향으로 노력하여 정당하게 살았다. 남들보다 고집이 세고 남을 괴롭히지 않고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여유롭게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음미했다. 다음주에 계속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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