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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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2
  • 장강뉴스
  • 승인 2023.02.2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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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 신작 시 - 있다면 멜랑꼴리

멜랑꼴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참 달콤한 죽음 같은 걸 생각했어요 멜랑과 맬랑을 구분지어 발음하지 못하고 멜랑꼴리를 그저 맹랑하거나 말랑한 것으로 여겼죠 맬랑은 어떤 정신이 말랑한 막 속에 있어서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말랑 혹은 물렁

바람이 불면 내 몸이 나무 이파리가 되는 것 같아요

연두의 숨결을 기억합니다

봄날의 잎들은 물이 든 풍선 같아
터질 것 같아서 만질 수가 없어

말랑은 산비탈의 꼬리 같은 것 어린 내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뜨거운 혀로 쓱 핥아주시던 그 때의 혀 같거든요

말랑에서 몰랑으로
몰랑에서 물렁 몰캉 말캉을 휘돌아 옵니다
모서리가 없는 말은 꽃 스친 옷자락 같습니다 그렇게 멜랑꼴리

혼자서 멜랑꼴리로 젖으면서 향기가 말랑할 것 같은 프리지어 꽃을 보는 중입니다 꽃은 향기로 영혼을 후리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소원이 있다면 날마다 향기를 갈아 마시며 사는 겁니다 당신의 향기는 너무 다양해서 실을 추리 듯 낱낱의 냄새를 느껴야 하지만

지금 가신다니 한꺼번에 나를 들킬 수밖에요

갈숲 스친 바람에서 온 들의 꽃향기를 구분하듯 당신의 향기 덩어리에서 겨드랑이 냄새 발뒤꿈치 냄새 그리고 아 귀밑의 솜털 냄새까지 미세하게 구별해 볼래요

냄새에는 철학이 있어요 진리는 아니지만 선험적이랄까 내 몸의 어떤 세포가 그걸 기억하는지는 모르지만 느낌들이 지렁이 떼처럼 꼬일 때가 있지요

그건 이미 프리지아 꽃향기 같은 당신의 어떤 냄새에 중독되었다는 것일 테지요 절대를 넘어선 순수, 일테면 순수 끌림 비판 같은 거를 생각하게 하는 멜랑꼴리는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

■이대흠 시인은 1967년 장흥 장동면 만수리 태생.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코끼리가 쏟아진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귀가 서럽다〉 〈물 속의 불〉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장편소설 〈청앵〉 〈열세 살 동학대장 최동린〉 등 ◆연구서 〈시문학파의 문학세계 연구〉 〈시톡1〉 〈시톡2〉 〈시톡3〉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이름만 이삐먼머한다요〉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 등을 펴냈고, 〈조태일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전남문화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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