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장흥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⑪ 1차조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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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장흥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⑪ 1차조사 마무리
  • 장강뉴스
  • 승인 2022.03.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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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대덕, 회진 민간인 피해자 조사 작업을 하며

장흥군은 현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한국전쟁 전후 장흥에서 벌어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 조사·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라 진실규명신청서를 작성하여 관계 기관에 접수한다. 이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은 본지 지면에 이 아픈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

한국전쟁 전후 좌익과 우익의 테러가 반복되었던 대덕읍 가학리
한국전쟁 전후 좌익과 우익의 테러가 반복되었던 대덕읍 가학리

 

한국전쟁 전후 대덕, 회진 민간인 피해자 조사 작업을 하며

지난 2021년 9월 28일 장흥문화공작소에서는 장흥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조사를 시작했다.

장흥군 지역을 세 구역으로 나눠 북부(유치면, 부산면, 장평면, 장동면) 중부(장흥읍, 용산면, 안양면) 남부(대덕읍, 회진면, 관산읍)를 각 2명씩 조를 이루어 5개월간 활동을 하였다. 2022년에도 이 조사는 지속된다.

많은 민간인 희생자와 말도 안 되게 끔찍한 사건을 알게 되었고, 유족들을 만나고 목격담을 듣는 동안 참 많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아렸다.

구술을 하는 사람도 녹음과 촬영과 메모를 하는 사람도 함께 울었다. 필자가 맡은 구역은 남부였으나 대덕지역 조사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였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유족들은 말하기를 두려워하였고, 큰 결심을 하고 말을 하여도 속울음 참아가며 하였다.

대덕지역 희생자는 1948년 포고령 위반 구속과 보도연맹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해방정국에서 자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며 역할을 하였던 인사들이 미 군정과 이승만 남한 단독정부가 들어서며, 포고령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된다.

이승만 정부는 그 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였기에 청년단을 결성하여 좌우 사상으로 서로 반목하게 하였다.

실제로 증언에 따르면, 전쟁 전 대덕 가학리에서 낮에는 청년단이 와서 좌익세력의 집에 가서 테러를 하고, 밤에는 좌익세력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 수습을 하였다고 한다. 증언하신 어르신 역시 친가는 우익 쪽이었고 외가는 좌익 쪽이었다고 한다.

전쟁 전 지방에서 좌익을 추종하였던 세력들은 신변의 위협과 인신의 구속을 당하여 청년단과 경찰로 대표되는 우익 세력에게 감정의 골이 깊어만 간다.

좌익세력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한 일이 보도연맹 사건이다.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들을 안양면 수문 앞바다에 수장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한국전쟁 초기 국군이 수세에 몰리고 이 지역 군경 역시 주민과 장흥을 버리고 약산으로 퇴각한다. 인민군이 장흥에 진주하고 각처에서 우익인사들을 인민재판으로 학살한다.

대덕도 예외가 아니었다. 3개월의 인민군 치하 장흥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자진해서 인민군에 부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다수 주민들은 살기위해 인민군에게 부역한다.

대덕 해안가 지역에서는 인민군이 약산도를 점령하기 위해 계속 대치를 하고 경찰과 전투를 벌인다.

상륙을 위해 배가 필요했던 인민군은 해안가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한다. 급기야 1950년 9월 14일 약산 전투가 일어난다. 인민군 150여 명이 사살되고 경찰과 지역방위군 29명이 전사한다.

1950년 10월 인민군이 퇴각하고 지역에는 지방 좌익들만 남게 되었다. 인민군은 퇴각하였으나 그들에게는 권력이라는 완장이 채워졌다.

지방 좌익들은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과 청년단 가족이거나 경찰, 군인 가족들을 제일 먼저 공격하였다.

한국전쟁 전후 좌익과 우익의 테러가 반복되었던 대덕읍 가학리
한국전쟁 전후 좌익과 우익의 테러가 반복되었던 대덕읍 가학리

 

대규모 집단 학살이 거의 모든 마을에서 자행되었다. 대덕읍 월정, 산정, 평촌, 연평, 연지, 가학, 영보, 신월, 도청, 축내, 양하, 신리, 옹암, 회진면 진목, 삭금, 덕산, 회진, 덕흥, 연동 거의 모든 마을에서 지방 좌익세력들이 학살을 자행하였다. 지방 좌익세력들은 거의 일가족 모두를 몰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1950년 10월 중순께 장흥읍부터 군경이 수복을 하고, 군경과 의용경찰, 학도대는 지방좌익 공격한다. 공격은 순화된 말이고 말 그대로 피의 보복이었다.

11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지방 좌익세력들이 희생된다. 비록 인민군 치하에 부역을 하고 우익 쪽 인사들을 무참히 살해한 세력들도 있지만 살기 위해 단순 가담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 마을, 고장에서 얼굴 맞대고 살던 이웃이 서로를 죽이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고, 인간의 가장 소중한 목숨을 너무도 쉽게 빼앗았다. 남은 유족들은 평생 고통 속에 살았고, 70년이 훨씬 지난 오늘도 아파하며 살고 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더 이상 지체하면 아픈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묻힐까 하는 염려가 제일 컸다.

10살 소녀가 목이 잘린 아비의 주검을 보고 평생 아파하며,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비의 죽음의 이유도 모르고 누가 그랬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빨갱이니 반동이니 하는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숨죽여 살았던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제공 : 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

◆1차 조사를 마무리하고, 2차 조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대덕읍, 회진면, 관산읍에서 희생되었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유족을 찾습니다. 좌․우 관계없이 한국전쟁 전후 불법적으로 무도하게 희생되었던 분들의 후손들께서는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 기록팀 문충선 010-6683-4977 / 장준혁 010-2613-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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