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 사찰 소개 - 천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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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사찰 소개 - 천관사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5.05.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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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창건한 천년고찰 천관사

“불자의 도량! 천관사,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사찰로 만들겠다”

▲ 천관사
호남의 5대명산 천관산 아래 천관사가 자리하고 있다.
관산읍 농안리 63번지 천관사 기슭에 위치한 천관사. 천관산 중턱임에도 절의 규모가 크고 배치에 여유가 있다.
▲ 지행주지스님
천관사가 천년고찰임을 증명하듯 밝혀진 문화재만 석 점이나 있다. 고려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795호 3층석탑과 도지정문화재인 통일신라후기의 석등과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5층석탑 등이 그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천관사의 원래 이름은 화엄사였으며 705년(신라 성덕왕4년)에 보원사를 세우고 정수암을 크게 개축하여 전당을 세워 교종의 승려 5인을 두어 절을 운영케하면서 화엄경을 설하였다 하며 신라 애장왕대(800~809)에 와서 천관사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당시 교종의 사찰로 크게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신라 성덕왕(720~737)이 천관사에 쌀 300석과 등유2석을 시주하였고 애장왕이 밭 800결과 노비400명을 시주했다는 기록과 89암자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성종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영통화상이 일찍이 꿈을 꾸니 北岬이 땅으로 솟아올랐다. 가지고 있던 석장이 날아 산꼭대기를 지나 북갑에 이르러 꽂혀졌다. 꿈에 석장을 세웠던 그곳에 숲을 베고 절을 지으니 지금의 천관사가 바로 그곳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정조때 장흥출신 위백규(魏伯珪)가 쓴 지제지에 당시에도 천관사에 48전각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져온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는 물론 억불정책이 시행되던 조선시대에도 각종 기록에 천관사 중수기록 들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관사의 명성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폐찰됐던 천관사가 1963년 한 스님에 의해 극락보전이 다시 세워지고 요사체와 탑 등의 유물을 모아 옛모습을 지켜오고 있다.
지행주지스님에 따르면 지제지에 나오는 기록을 토대로 전개도를 그려놓고 큰법당 터를 찾고 사방으로 넓혀가보니 문헌과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2014년 발굴조사에서 큰법당의 크기가 75평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천관사는 복원계획에 따라 큰법당은 내년 가을 준공예정이며 천풍루, 선원복원도 차례차례 복원될 예정이다. 전문가들로부터 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천관사 석등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조만간 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다
천관사 지행주지스님은 “각종 문헌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천년고찰 천관사가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옛 모습을 다듬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천관사가 아름다운 절로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절로 인식되도록 꾸려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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