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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인공 - 강진 동광전업(주) 김한진 회장김한진 회장 “내 인생 마지막 꿈인 개인장학재단 설립” 목표
김채종 기자  |  cogo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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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1  11: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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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진 회장 “인재양성은 지역의 경쟁력”…‘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앞장
탐진장학회 설립부터 현재까지 장학금 기탁…2006년 군민훈장 석류장 받아

 

   
▲ 김한진 회장

우리말 속담에 콩 한 쪽도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콩 한 쪽 같은 것도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뜻과 더불어 작은 것도 나눌 줄 아는 사람만이 실로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뜻이 은연 중 내포되어 아름다운 나눔의 미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60~70년대 너나없이 가난한 그 시절에는 밥 한 그릇도 없는 이웃과 반 그릇씩 나눠 먹으며 미래를 꿈꾼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죽으로 배를 채워야 할 정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수성가한 동광전업 김한진 회장(74세).

이웃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생각되고 팍팍한 형편에도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었던 오랜 인정이 몸에 배여서 일까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고 앞장섰다. 그러다 20여년전 본격적으로 강진 장흥미래를 위해 지역 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알고 탐진장학회 설립에 참여해 지금도 인재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김한진 회장의 인생을 살펴보면 보답을 바라지 않는 진정한 베풂의 자세, 나눔의 아름다움을 실천하며 살아 온 삶이 아닐 수 없다.

50여년전 오로지 뺀치 하나로 지금의 동광전업(강진군 강진읍 목리)을 일궈낸 김 회장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 국민훈장 수여

일찍이 전기업을 시작한 김 회장은 70년대 중반 새마을운동과 함께 농촌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산골마을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당시 농촌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서민들은 호롱불, 부잣집에서는 양초를 사용해 밤을 밝히던 시절이었다.

김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농어촌전기화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다 보니 강진·장흥·해남·완도지역 전기공급 사업이 대부분 그의 회사를 통해 이뤄졌다.

성장과 함께 경제적 기반을 닦아 전남지역 굴지의 전기회사로 발돋움해 현재까지도 전기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장학금 지급

김 회장은 일신의 부귀와 영달을 택하지 않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지역사업가로서 사회환원사업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앞장섰다.

특히, 김 회장은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지역 인재들이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 장학사업에 뛰어들었다.

광주지방검찰청 장흥지청과 범죄예방위원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1997년 (재)탐진장학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설립 당시 김 회장이 상당한 장학기금을 기탁했으며, 현재까지 5억원 이상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다.

   
▲ 감사패

또한, 탐진장학회 뿐만 아니라 강진군민장학 사업에도 꾸준히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지역 대소사에 크고 작은 금일봉을 지원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렇듯 지역발전과 인재육성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김 회장에게 남모를 아쉽고 서운한 일들도 많다고 한다.

김 회장은 “지역 후배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건물도 사주고 돈도 빌려줘 성공하기를 바랬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망하는 후배들이 많았다” 며 “성공해서 떳떳하게 찾아와 고맙고 감사하다는 후배들이 나타나지 않아 아쉽고 서운하다” 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 표창장

김 회장은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열정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전남역도연맹 회장과 전남전업인 장학회 이사장, 강진여중 초대 육성회장, 국제라이온스 309-C지구 부총재, 강진군체육회 부회장, 강진라이온스클럽회장, 강진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처럼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장흥지청 개청 100년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 국민훈장 석류장

김 회장은 “강진읍 목리에서 태어나서 강진을 떠나지 않고 고향에 사업장을 놓고 오로지 전기업 한 길을 걸어온 것이 서남부에서 만큼은 모범적인 대표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며 “내 인생의 마지막 꿈은 개인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지역후배들이 마음 놓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다.

김 회장은 당뇨 합병증으로 콩팥이 모두 망가져 장기간 혈액투석를 받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을 알고 큰 아들이 조직검사를 통해 조건이 맞자 신장을 기증해 이식받아 현재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큰 아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늘 가슴속 깊이 담고 있다” 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 회장의 가족으로는 부인 이영자(70) 여사와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김한진 회장 가족

우리나라는 갈수록 계층 간 대립이 심화되고, 갑질문화가 만연하고, 차별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점차 사라지고 있고, 현실은 갈수록 각박하고 삭막해 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보여준 김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실종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있다.

   
▲ 김한진 회장

김한진 회장의 걸어온 길

강진읍 목리에서 1946년 태어남

강진여중 초대 육성회장 역임

강진라이온스 회장 역임

전라남도 역도 연맹회장 역임

한국전기공사협회 중앙회 이사

전기공사협회 전남지부장 역임

국제라이온스 309-C지구 부총재역임

탐진장학회 이사장 역임

재단법인 전남전업인 장학회설립 및 초대이사장 역임

 강진군민장학재단 이사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서훈(2006)

내무부장관 감사장(1984)

광주지방 국세청 표창장(1984,1987)

문교부장관 감사장(1989)

강진군민의상 수상(1992)

상공자원부 장관 표창장(1994)

재무부장관 표창장(1994)

법무부장관 표창장(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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