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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인공 23 - 이영권(전, 국회의원)원로에게 듣는 인생이야기
조창구 기자  |  whckdr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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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1  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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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에서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이영권 전 국회의원

고향에 내려와 검소하고 소탈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이영권 전 국회의원
이영권 전 의원 “고향에 살면서 지역 미래를 위해 할 말은 해야 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고향에 내려와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정치활동기간에 조금이라도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으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등 고향에서 처신하고 대접받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장흥 용산면 어산마을 출신으로 세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돼 의정활동을 하다 고향에 내려와 검소하고 소탈한 일상을 일구고 있는 이영권·오금련 전 국회의원 부부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 이영권 전 국회의원

이영권 전 의원은 장흥군이 속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3선의 경력에 상임위 중 한 곳인 국회교육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3선 국회의원 경력과 이후 2곳의 대학에서 학장으로 근무했다.

이 전 의원은 지역에 기거하고 있지만 팔순 중반의 고령임에도 전직국회의원모임인 헌정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가 하면 한국문학특구포럼 등 지역에서 열리는 중요한 행사에는 참석해 행사의 존재감과 무게감을 상승시키고 있다.

가을단풍이 한창이던 지난 가을 보림사가 있는 유치면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영권(86) 오금련(81) 전 국회의원 부부를 찾아 알게 된 얘기들을 전한다. 

우선 이영권 전 국회의원을 생각하면서 가졌던 몇가지 선입견이 틀렸음을 밝힌다. 국회의원 3선과 학장을 역임했던 분이시니 축적한 재산이 상당할 거라는 선입견과 보름달같은 둥그런 인상이어서 얌전한 학자풍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다.

먼저 재산은 특별히 가진 게 없다고 한다.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운동 과정에 들어간 돈이 부담이 됐던 데다 의원생활 중에 따로 청탁이나 압력, 공천 댓가금을 받지 않았기 따로 재산을 축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그런 떳떳함이 있다보니 행보가 자유롭다.

이 전 의원은 “주민들 누구도 만나면 반가워한다. 그것이 재산 아닌가?”라며 “검소한 생활습관이 배어 있고 아주 좋다. 그러니 어떤 거리낌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다. 다만 없는 처지다 보니 주변분들에게 배려 못해드리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는 말에서 이 전 의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많지 않은 국회의원연금으로 생활하면서도 유니세프에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또 다른 선입견은 둥그런 인상처럼 학자와 같은 이미지여서 한없이 얌전할 것 같다는 것.

   
▲ 이영권. 부인 오금련 여사

그런데 이 전 의원은 친구들 사이에선 가장 무서운 사람으로 통할 정도로 무(武)를 겸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향을 떠나 목포로 유학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권투선수를 했던 데다 불의한 것을 못봐주는 성격이다 보니 친구들이 제일 무서워하면서도 제일 좋아했다고.

집에서 가져간 쌀을 보리쌀로 바꿔 끼니를 걱정하던 친구들과 나눠먹을 정도로 의리남으로 통했다. 졸업 후 이사할 때면 많은 친구들이 달려와 팔을 걷어부쳐 이사걱정은 안해봤다.

신언서판(身言書判)도 좋지만 남자라면 정의를 위해서나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이 전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게 된 데는 집에 안중근의사 초상화를 모시고 살았던 부친(이삼섭)이 안의사처럼 살아라라고 가르쳤던 영향이 컸다. 독학으로 한자와 한글을 뗀 부친은 세상을 향해 떼기(볏짚 등으로 만들어 휘돌려치면 ‘빵’하고 큰 소리가 나는 물건)를 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야망이 있으셨던 사람이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부친은 주재소(파출소)에 끌려가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을 만큼 촌부지만 민족정신은 누구보다 강했던 분이다.

그런 부친의 영향 탓인지 어려서부터 잘못된 일에는 나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주재소앞에서 데모도 하고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는 영화상영에 항의해 돈을 돌려받게 한 일도 있었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의 공은 첫 손으로 매일 찬방에 물을 떠놓고 공을 들였던 어머니 정요순 여사를 꼽는다. 평생 여유없는 생활속에서도 고문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살려내고 평생 고기 구경 못해가면서도 집안살림살이를 알뜰하게 챙겨오셨기 때문이다.

강진 군동 덕천마을에서 시집온 아내 오금련 여사의 내조도 만만치 않다. 아내인 오 여사도 가정을 꾸리면서 양장점과 한식당, 우동가게 등을 운영해 선거비용으로 인해 생긴 빚을 갚느라 고생하면서도 한번도 항의하거나 유세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 이영권 원로가 살고있는 집(장흥군 유치면)

이영권 전 국회의원은 현역 의원 시절 특히나 타지역에 비해 낙후됐던 고향인 장흥발전에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홍수피해가 심했던 탐진강 제방이며 예양교와 탐진댐 건립에도 역할을 했는가 하면 동학혁명 당시 관군과 농민군으로 갈라섰던 지역민심에 충(忠)과 의(義)의 개념으로 정리해 갈등과 분란을 피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기념탑 건립과 영회당 리모델링, 향교 복원사업을 통해 지역통합을 꾀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안기부에 끌려간 적도 있고 전국 수배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던 이영권 전 국회의원.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은 몇 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 남을 일을 해야 하며 고향에 살면서도 지역과 미래세대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살아온 과정에 대해 책을 쓰더라도 자기자랑이 아닌 자신의 살아온 모습 그대로 써서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영권 전 국회의원이다. 그의 자서전이든 회고록이 기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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