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강진역사(1930~40년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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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강진역사(1930~40년대) 2
  • 임순종 기자
  • 승인 2015.04.06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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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40년대 강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엽서

강진 예인회 임영관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1930~40년대 강진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엽서를 공개했다.
총 2장의 사진엽서에는 엽서당 3점씩 사진이 담겨 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건견장, 백금포, 강진우체국, 욱정통, 다도해연결편 등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담겨있어 강진역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엽서는 1930~40년대 제국 재향군인회 강진분회에서 발행하고 일본 도쿄 간다 구(현재 도쿄 도 지요다 구)에서 재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엽서에 나와 있는 사진에 대해 지명이나 위치 등 자세히 알고 계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장강뉴스 ☎061-864-8003 / 편집자 주

■사진설명

 
▲건견장(乾繭場) : 누에고치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누에고치를 말리는 장소다.

=잠사업은 누에를 쳐서 생사를 생산하는 산업으로 뽕나무를 재배하여 누에를 쳐서 고치를 생산하는 양잠업이 있었다.
일제가 전남지역을 양잠 최적지로 선정하는 것은 기후상의 유리성을 고려한 것은 물론이지만 잉여 노동력의 활용이란 경영상의 이점을 노린 것도 간과 할 수 없는 요인의 하나였다.
당시 고치의 처리방법은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새로 건견시설(乾繭施設)을 설치하게 하여 고치의 처리를 개선하도록 했다. 1910년 강진에 잠업전습소를 설치했다.

▲우편소(郵便所) : 강진우체국

=강진우체국은 1910년 강진군 군동면 탑동리에 강진 우편소 개소하고 1916년 강진면 남성리 84번지 신축이전하게 된다. 1940년 강진 우편국으로 국명을 개칭하고 1945년 강진우체국으로 승격했다. 1960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42-1 신축이전 2001년 청사 개축 (대지1,607㎡, 연면적 2,357.96㎡ 지하1층, 지상3층) 했다.

▲욱정통(旭町通) : 시장 통 추정

=욱정통(旭町通)이란 시장이나 상가 중심지를 뜻한다.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욱정통(旭町通)이라는 명칭이 일본식 지명으로 강진지역에서 시장통으로 현재 강진읍 동성리 강진시장으로 추정된다.

 
▲백금포항(白金浦港) : 강진군 군동면 영포

=군동면 호계리 백금포가 유명한 포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서 일본으로 가는 쌀이 실렸고, 60년대 말까지 전국으로 물건을 팔러다니는 풍선이 정박하던 곳이기도 했다.
백금포에는 창고가 100여개를 넘었고, 50톤 안팎의 대형 풍선 30여척이 들락날락 거렸다고 한다.

▲다도해연결편창환(多島海連結片倉丸) : 강진지역에 물건을 운반하는 배

=사진속에는 강진읍 해창지역으로 추정된다. 사진속 배는 바람을 이용하는 돛외에도 동력을 이용하는 시설이 보이고 K라는 글자가 적혔다. 이는 강진에서 쌀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을 도암 신전으로 운송한 것으로 추정된다.

▲탐진강점수(耽津江鮎狩) : 탐진강에서 메기낚시를 하고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

=탐진강은 길이 51.5㎞. 유역면적 862.5㎢. 일명 납양강(納陽江)이라고 한다.
지명유래는 신라 문무왕 때 탐라국 고을나(高乙那)의 15대손 고후(高厚)·고청(高淸) 등의 형제가 내조할 때 구십포(九十浦)에 상륙하였다는 전설에 연유하여 탐라국의 ‘탐(耽)’자와 강진(康津)의 ‘진(津)’자를 합하여 탐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사진속 위치는 군동면 석교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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