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병 이남(李楠) 거의(擧義) 순절에 대한 학술발표회 개최
상태바
최초의병 이남(李楠) 거의(擧義) 순절에 대한 학술발표회 개최
  • 임순종 기자
  • 승인 2024.02.27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초의병 이남(李楠) 선양사업회」 창립총회 및 『강진·해남 원주이씨의 충절(忠節) 활동』 학술발표회

 

3월 8일(금) 강진아트홀에서 오전 11시 『최초의병 이남(李楠) 선양사업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연이어서 오후 2시부터 『강진·해남 원주이씨의 충절(忠節) 활동』 학술발표회를 개최된다. 이 행사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우리 지역과 관련된 뜻깊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건립 사업이 오는 2025년 6월 1일 “남도 의병의 날” 개관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전남도가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을 통해 남도 의병의 구국 충혼을 널리 알리고 의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공모를 통해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원 부지 36만3686㎡(11만평)에 사업비 440억 원을 들여 연면적 6884㎡ 규모로 건립된다고 한다.

사업추진의 배경으로는 을묘왜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조선 시대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려 했던 호남 사람들의 절개와 의리를 드높이고자 함이다.

그 근거는 정묘왜란 후 강진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된 「금릉창의록」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호남절의록』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난 극복을 위해 활약한 1,463명의 호남 의병들의 행적을 모아놓은 책이다. 역사적으로 의병 창의 건수나 인원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신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특별히 이번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구성에는 임진왜란보다 40여 년 앞서 우리 지역 해남 달량성 일대에서 발생한 을묘왜변에 대해 새롭게 주목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처음 겪게 되는 대변란으로 500여 명의 관군과 민간인들이 사망했을 정도로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만 해도 의병이란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에 이곳과 머지않은 강진 성전면에 거주하고 있었던 이남(李楠)은 분연히 거의(擧義)하게 된다.

무장 현감을 퇴임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50세 노구의 전직 수령이 가솔들과 장정들을 모집해 전투에 나가 싸우다 전사했었다는 사실은 이후 조정에서도 크게 회자(膾炙)가 되었다. 명종은 이남의 이러한 충의를 높이 사서 포상하고 치제(致祭)를 내렸다는 기록이 국가기록인 『명종실록』에 나타나 있다.

지난 2월 5일자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호남 의병 명문가’ 컬럼에서도 소개된 바와 같이 잊혀져 사장(死藏)될 뻔한 을묘왜변 시기의 창의(倡義) 사실들이 지역 사학계 연구자들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의 초기 의병사에 새로운 사료로써 매우 크나큰 가치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이남의 본관은 원주이씨로 해남 마산면에서 태어나 무과급제 후 강진의 도강조씨 집안과 혼사를 하게 되면서 강진 성전면으로 이거 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은 동족촌(同族村)을 이루어 양 지역에 살고 있다.

을묘왜변에서부터 수많은 남도의병들의 이름 없는 혼(魂)은 때로는 불의(不義)에 맞서고, 때로는 외세 침탈에 저항해 온 충절(忠節)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현대사에 계승되었다. 이러한 호국정신(護國精神)은 다시 살아나 지금까지도 우리 남도민의 마음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