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110년 전의 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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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110년 전의 유훈
  • 장강뉴스
  • 승인 2024.02.0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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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갑(강진군 군동면 덕천리)
윤영갑
윤영갑

 

예전의 농경사회가 산업화와 핵가족화 시대를 거치면서 조상의 의미를 잃고 또 조상의 얼이 숨어있는 유산이 도리어 화근이 되어 서로가 등지게 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잘못 굴러가는 것이다.

현대는 사촌이 없어지는 시대라고들 한다. 형제자매가 없다 보니 백‧숙부가 없고 이모‧고모가 없어지는 세상이다. 이러다간 친인척 호칭마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기우와 함께 조상에게 욕되더라도 나만 편하고 좋으면 된다는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회로 심화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본주의 물결이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황금만능주의가 만연되면서 나밖에 모르는 아집과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사고방식이 형제자매끼리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조상의 얼을 기려야 할 뜻 있는 날이 오히려 불화와 반목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되는 사례를 접하기도 한다. 이번 설 명절엔 조상의 중요성과 고향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110년 전 고조부님께서 남긴 유훈을 되새겨 본다.

 

나의 고조부는 해남윤씨 25세손으로 이름은 붕식(鵬植), 자(字)는 계온(啓溫), 호(號)는 운암(雲菴)이다. 서기 1837년(丁酉年) 출생해 1920년(庚申年) 84세로 돌아가셨다. 고조부께서는 화목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정신을 후손들이 이어가 주기를 바라며 ‘내 나이 80이 다 되어가니 언제 이승을 떠날지 몰라 마음속 깊이 하고 싶은 말을 후손들에게 남긴다’며 자필 유훈을 남겼다. 총 24행 532자로 작성되어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을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우리 조상은 대대로 도암 지석리에서 살아왔고 그곳은 조상이 일구어 놓은 유물과 세간, 발자취와 조상의 영혼이 깃든 곳이니 자손들은 그 땅을 감히 소홀히 하지 마라.

▲당대 친인척이 단촐하여 1862년(壬戌年) 형님(在植)과 함께 후손을 위한 계(愛恭契, 지금도 후손들이 매년 정월 계를 치르고 있음)를 만들었으니 후손들의 관혼상제와 교육에 보태고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조상의 뜻을 어기지 말고 절약하여 써라.

▲부정한 물건을 집안에 들이지 말고 가문의 흥망은 교육에 달렸으니 자식의 가르침에 힘쓰되 스승을 잘 택하고 사소한 가사에 간섭하거나 세상의 복잡한 일에 정신 팔지 않도록 해야 한다.

▲후손들은 조상의 뜻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빛나게 이어갈 것이며, 이 유훈을 종이에 써진 평범한 글귀로만 생각하지 말기를 이 늙고 쇠약한 몸이 바라고 또 바란다.

이 유훈은 77세 때인 1913년(歲昭陽赤奮若/癸丑年) 여름에 작성되었고 7년 뒤 84세로 돌아가셨다. 어렸을 적 나의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앉아 늘 이 유훈을 읊조리셨다.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알아보지도 못하는 한문으로 된 유훈서를 펼쳐 놓고 훈육하셨다. 간혹 사촌 형제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유훈을 펼쳐 놓고 읽어주시곤 했다. 어렸을 땐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고조부의 유훈이 우리 가문을 지켜온 버팀목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유훈은 우리 집안의 훈육서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이다.

그런데 고조부 형제가 계를 맺어 후손들에게 남겨 준 재산이 집 안 불화의 씨앗이 되고 있다. 유훈 서두에 적시한 지석리 땅 일부가 도로 확장에 포함되면서 토지보상금이 나왔는데 그동안 문중 토지로 관리해왔던 토지임에도 큰 고조부 후손이 조부 명의로 되어 있던 거라며 보상금을 문중(계)에 내놓기를 거부한 것이다. 사사로운 욕심과 눈앞의 조그마한 이익에 얽매이지 말고 조상의 슬기로운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후손들끼리 화목하고 돈독하게 지내기를 바랬던 뜻이 무너지는 느낌에 안타까울 뿐이다.

친인척이 적어 당신들이 감내했던 고단함을 후손들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아끼고 절약하여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라는 뜻으로 애공계愛恭契를 만든 순수한 마음이 돈 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적 및 등기제도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 토지조사령, 1918년 임야조사령, 1950년 지적법 제정, 1960년 부동산등기법 시행으로 지금의 부동산 등기제도 기반이 되었다. 그간 몇 차례의 부동산특조법시행시 문중 명의 등록추진을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고 피하더니 결국 이 사단을 일으킨 것이다.

1862년 이후 16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계책에 해당 토지에 대한 관리와 수익이 적시되어 있다. 매년 계 갈이에 그의 고조부와 증조부, 조부와 부친 형제가 참여해 이의제기가 없었음에도 60년대 이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부선망장자상속제도를 이용해 상속해 가버린 것이다. 아쉬운 것은 몇 대를 거쳐 이 토지를 현지 관리해 왔고 인접 토지소유자로 그 내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일가마저 제3자적 입장에서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회피함으로써 돈 앞에 진실이 매몰되는 안타까움을 보여준 것이다.

처음 등기제도가 생긴 당시는 지금보다 장자 우선의 사회적 분위기가 심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형제가 만든 계 자산이지만 형 명의로 해 놓고 형제가 함께 관리해 왔을 것으로 추정되며 명의에 관계없이 해당 토지에 대한 관리 및 공과금을 계에서 지출하고 거기서 파생된 수익은 문중(계) 수입으로 했던 것이다. 손자 명의 상속 이후 문중 대표에게 통지되어 납부해 오던 재산세를 등기명의자인 자기에게 통지해달라고 해 몇 년 전부터 개인에게 통지됨으로써 해당 토지는 사실상 사유화되어 버렸다.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에서도 심증은 가지만 현행법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필자는 고조부가 눈물로 쓴 유훈을 내밀며 조상의 뜻을 거스르지 말자고 압박하고 사정해도 요지부동이다. 하늘이 두렵지 않을까, 저승에서 조상님들을 어떻게 뵐려고 그러는 걸까.

민족 대명절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명절 연휴 뒤 부모 또는 형제지간에 다투다 살인까지 일어나는 비극적인 뉴스를 간혹 접하게 된다. 대부분 재산 문제로 결국은 돈이 원인이다. 호적제 폐지와 물질 만능이 부른 시대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조상이 물려준 문중 재산은 애초에 그들이 바랬던 목적을 벗어나 불화의 씨앗이 되고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린 핏덩이를 버리고 집 나간 뒤 그 자식이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산업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서류상 엄마라는 이유로 수십 년 만에 나타나 사망보상금을 타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참한 세상이 되었다. 돈에 눈이 멀어 환장한 물질 만능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번 설에는 오랜만에 가족 친지가 모여 훈훈한 고향 얘기 나누며 조상의 뜻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필자가 가문의 치부를 들춰내면서까지 글을 쓰는 이유를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10년 전 눈물 흘리며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창호지 위에 써 내려간 고조부의 뜻을 현시대에 다시 한글로 옮겨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는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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