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마음속에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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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마음속에 분노가
  • 장강뉴스
  • 승인 2024.07.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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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미(강진동성향우)
서상미
서상미

 

돌을 던지거든 솜으로 받으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모든 악에 대한 저항은 노여움으로 하지 말고 평정한 태도로 하라는 말이다. 악에 대해서 가장 강한 태도는 조용한 태도다. 비록 이쪽이 정당하더라도 노여움으로 맞선다면 끝내 악을 정화하지 못하고 함께 화를 동화되고 만다. 상대방이 화를 낸다고 해서 함께 화를 내버리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는커녕 외려 다른 일로 해서 싸우기 십상이다.

누구든지 성을 낼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성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로운 일을 위해서 노해야 할 일은 마땅히 노해야 하나 감정상의 노여움은 함부로 나타내지 않는 게 좋다.

출요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부끄러움도 없이 성 내기를 좋아하면 그는 분노의 결박을 당해 어둠속에서 등불을 잃는 것과 같다. 도 이런 말도 있다. 달리는 수레를 붙잡듯 분노를 제어하면 훌륭한 마부가 길을 가듯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간다. 분노 그것은 우리 마음의 독인 것이다. 그것을 잘 제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방향이 밝음과 어두움의 갈림길에서 정해지는 것이다.

비둘기 한 쌍이 살고 있었다. 가을이 되어 숫비둘기는 익은 과일을 물어 날라서 동우리에 가득차게 만들었으나 햇빛에 건조해져서 과일은 절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숫비둘기는 화를 내며 “얼마나 고생하며 물어온 과일인데 너 혼자만 먹어 버려” 하며 암비둘기의 말도 듣지 않고 암비둘기를 주둥이로 쪼아 죽여버렸다.

며칠 후 비가 와서 과일이 본래의 크기로 불어오르자 진실을 알게 된 숫비둘기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원통해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지나가 버린 뒤였다. 아무리 원통해 하고 뉘우쳐 본들 암비둘기를 다시 살릴 수는 없었다.

분노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자초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한순간의 분노 때문에 스스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고요한 마음에는 분노가 없다. 분한 감정을 잡는 것을 남에게 주는 일이라거나 양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오, 그것은 먼저 나 자신을 보호하고 이롭게 하기 위한 생활의 기술이다. 내가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내 자신에게나 남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때의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는 것은 남을 해칠 뿐 아니라 내자신의 뼈와 살을 찌르게 된다. 울화가 치밀어도 참으면 달리는 마차를 제어함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평안과 고요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분노하여 언제나 원한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슬기로운 자는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되는 분노를 버릴 줄 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분노는 끊으면 걱정이 없어지고 온밤 내내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마음속에 있는 분노부터 없에십시오. 분노가 없어진다면 그 마음속에 절로 편안히 고여들 것이다. 그대 마음속에 분노가 고여 들거든 우선 말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지독히 화가 날 때는 우리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 사랑하며 살아도 벅찬 인생인데 이렇게 아옹다옹 싸우며 살아가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화를 낼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등을 돌렸다. 그러나 내가 고요한 마음으로 웃으며 마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그리하여 난 알 수 있었다. 내게 가장 해가 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감춰진 분노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분노하는 마음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 마음을 다스릴 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사랑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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