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 강진 선비 김응정은 장흥에 삼가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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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 강진 선비 김응정은 장흥에 삼가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 장강뉴스
  • 승인 2023.05.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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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장흥군 문화관광해설사협회 회장)
문병길 회장
문병길 회장

■ 해암(懈菴) 김응정(金應鼎)

본관은 도강(道康), 자(字)는 사화(士和), 호는 해암(懈菴)이며, 아버지 김한걸(金漢傑)는 예빈시참봉(禮賓寺 參奉)이고, 어머니는 해남윤씨이다. 강진군 병영면 삭둔리에서 출생하고 묘소도 그곳에 있다.

해암 김응정(1527~1620)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시가에 능했으나 묻혀진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해암 선생은 조선시대 명종왕비 문정왕후(文定王后)와 명종과 선조 임금이 세상을 떠났을 때 고령에도 불구하고 상복을 입고 상사(喪事)에 임했다.

당시 선생은 비록 관직은 없었지만 『예기』의 내용에 따라 그대로 예를 행하였으므로 당시 전라감사 정철이 조정에 계문(啓聞)하여 벼슬을 내려주기를 청하였다. 그로 인해 경릉참봉(敬陵參奉)과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하고 토지와 노비를 모두 팔아 군량미 500석을 비축하여 의병장 고경명과 조헌을 크게 도움을 주었다.

선생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1567년(명종 22)에 명종의 죽음을 듣고 지은 시조「서산일락가(西山日落歌)」가 있다.

현존하는 그의 시조 작품은 『해암문집』 가곡조(歌曲條)에 8수만이 전하고 있지만 오이건(吳以建)이 쓴 「김해암 가곡집서(金懈菴 歌曲集序)」에는 그가 지은 노래가 100여수 이상이나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저서는 『해암문집』이 있다.

■ 장흥 삼가정(三佳亭)

장흥 부산면 용반리에 있었던 건물로. 해암 김응정이 세웠다.

김응정은 임진왜란 이전에 전라병영성의 전략적 단점에 대해 조정에 상소한 한 임진왜란 공신으로 정자를 짓고 유서지소(遊棲之所)로 사용했는데 이곳 삼가정(三佳亭)은 그 후 이름이 잊혀져 강정(江亭)이라 구전되어 오고 있다.

장흥 부산면지(p. 663)에 옛날 강진의 김처사라는 분이 용반리 용서마을의 서남쪽 전량곡 아래 사모대(紗帽臺)에 있는 터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면서 항상 삼동가(三冬歌)를 부르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용호정(1828년 건립, 전하남도 기념물 제 68호)이 건축되기 이전에 옛 처사 해암(蟹庵) 김공(金公)의 사모대(紗帽臺)터 위에 있었던 강정(江亭)이라는 삼가정(三佳亭)흔적 시문을 찾아필자가 부산면장으로 재직할 때 아래와 같이 안내판을 세웠다.

삼가정(三佳亭)

부산면 용반리에 있었던 건물이다. 김응정(金應鼎)이 유서지소(遊棲之所)로 사용했는데 강정(江亭)이라고 구전되고 있다.

물이 아름답고 산도 아름답고 정자 또한 아름다워

/佳水佳山亭亦佳(가수가산정역가)

한 가지 아름다움도 어려운데 세 가지나 아름답다니

/一佳難得況三佳(일가난득황삼가)

삼가정에서 아름다운 벗을 만나니

/三佳亭相逢佳客(삼가정상봉가객)

이름은 세 개지만 실지는 네 개라네

/名則三佳實四佳(명칙삼가실사가)

※자료출처: 해암(懈菴) 김응정(金應鼎)유고집

2019. 4. 부산면장

■ 삼가정이 있었던 사모대(紗帽臺) 기문(記文)

장흥의 북쪽 봉령(鳳嶺)고개 기슭에 장흥군 부산면 용반마을에 있는데 낭주최씨 최규문(崔奎文)이 세거(世居)한다.

고개 서쪽에 지맥(支脉)이 꿈틀거리고 내려가서 당고개(당현:堂峴)가 되고 무넘기고개(수월현:水越峴)가 되어 주위로 마을을 보듬고 북쪽으로 돌면 언덕이 큰 강에 들어섰으니 이것이 사모대요, 대(臺) 앞에 선돌 모양이 사모(紗帽)와 같으며 그 위에 10여명이 앉을만하고 또한 2칸 집을 지을 만하다.

맑은 물이 휘감고 기이한 돌이 벽을 이루며 기이한 풀들이 돌 틈에 자생하고 북쪽으로 가지산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천마봉, 서쪽으로 기역산이요 산 뒤로 수인산이 봉우리를 들어내니 절경이다. … 이하하략 …

지촌(志村) 김영(金瓔:1769~1830)

<原文>

紗帽臺記

府北鳳嶺之麓南馳爲龍溪坊之龍盤村朗州士人崔居汝炯世居焉嶺之西一支逶而下爲堂峴爲水越峴而周圓把村稍北而回有一石阜斗人大江昻昕謂紗帽臺前立石形如紗帽故得名云其上可坐十餘人亦可作數間居字故得名云淸?周面怪石成壁奇花異草雜生石?北望迦智山南見天馬峰西對騎驛山後修仁山露其峰眞絶境也

… 이하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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