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최일중 성균관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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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최일중 성균관 전인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6.02.2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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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孝道)를 보다 -上

요즘 들어 사람들과 효도에 관하여 대화를 나눠보면 효도란 부모님에게 잘해드리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다.
지금은 급격한 산업사회의 변화로 효(효孝)에 관한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져 가고 있다. 때문에 국가에서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적 가치관 확립을 위한 국민정신의 고양 책으로 범국민적인 경로효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로효친을 단지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란 피상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가슴에 좀 더 효(孝)에 대한 절실한 개념 설정이 필요할 줄 안다.
그럼 혼탁해진 효사상은 우리의 귀에 익숙해진 경로효친이란 말은 사실 애친경장이라고 해야 옳다.
이 말은 어버이를 사랑으로 모시고 어른을 극진하게 공경하며 섬긴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를 사랑으로 극진히 모시면 자연히 어른을 공경하게 된다는 의미도 내보되어있다.
늙은이라는 말은 일제 때 노자무용(老者無用)이라는 말에서 연유된 것인데 학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때문에 노인을 섬긴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옛을 존중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요즈음 효의 사상은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흐려지고 있다. 이는 광복 후의 교육이 바른 위치에 서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본다.
혼란과 방황이 연속되어온 우리의 역사는 인간성 상실을 야기했고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수입은 사대주의 사상에 젖게 했다.
그러한 혼탁한 사회의 변화에 전통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효행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과연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어린 학생들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훌륭한 분이냐 하고 물으면 그들은 거침없이 대통령이요 혹은 링컨이요 라고 대답한다. 웃지 못 할 일이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훌륭하게 여기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 자세를 바로 잡도록 가정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면 태어나기 전부터 태교가 이루어 져야 한다. 우리조상들은 이미 2000년 전부터 이 태교가 지켜져 왔다고 한다.
율곡의 어머니이신 신사임당은 태교를 잘하시어 성리학의 대가를 탄생시켰다. 태교는 어머니 혼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주변에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 따라서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다. 낮 뜨거울 정도로 자기들의 부모에게는 불효하면서 자기 자식이 효도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또한 효의 의미는 동양에서 오랫동안 깊이 뿌리를 내린 우리 조상들이 실천해 온 효도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서는 저마다 각기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으나 효도란 사람이 자기를 낳아준 제 부모를 섬기는 도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부모의 뜻을 받들어 이어가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효는 부모의 생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이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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