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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 3최일중(한국성씨본존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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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2  17: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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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信川 康氏(신천 강씨)

▲始祖 康虎景(시조 강호경)

강씨는 중국의 경조(京兆-협서성<陜西城> 남부 장안현 부근 일대를 차지하는 행정구역) 출신으로 기자조선시대 기자(箕子)의 막료였던 강숙(康叔)이고 둘째 아들 강후(康侯)에 연원(淵源)을 두고 있으며 그의 67세손 성골장군 강호경을 시조로 하였다.

강호경은(고려사와 동사강목)에 의하면 신라 말엽의 사람으로 전국을 유랑하다가 송도(松都-개성의 옛 이름) 부소산 골짜기에 자리 잡고 살며 아들 강충(康忠)이 보육을 낳으니 그가 곧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외고조부(일설에는 외증조부라 함)가 되며 고려가 건국한 뒤 원덕대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씨의 실질적인 시조는 강호경의 14세손인 충렬공 강지연으로 하는데 고려 고종때 호종공신에 올라 충렬왕때 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강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 등에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신천, 곡산, 재령을 제외한 강씨는 세거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현재 강씨는 신천을 대종으로 하고 강지연의 5세조의 6세손 상산부원군에 봉해진 강윤성을 파조로 한 곡산파와 8세손 안릉부원군에 봉해진 강득용을 파조로 한 재령파로 대별하며 전라감사를 지낸 강영을 제주강씨의 입도시조로 하여 이어져 오고 있다. 강씨는 일찍이 황해도 신천 지방에 자리 잡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여 가문의 융성을 누렸다.

오늘날 모든 신천강씨는 강지연의 후손이다. 강득룡은 이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친오빠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삼사우사를 지냈는데 조선이 개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충절로 관악산에 들어가 연주암에 살면서 매일같이 연주대에 올라 송경(개성)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연주암 연주대의 명칭은 이때 생긴 것이다.

이태조는 그를 안릉부원군에 봉하고 안전공이란 호를 내렸고 후손은 재령에 관적했다. 고려조 강조는 목종 때 무신으로 도총관을, 강증은 예종 때 평장사, 강호문은 공민왕 때 판전교시사, 강순룡은 공민왕 때 찬성사 등을 지낸 명문에 속했지만 조선조에 와서는 왕후를 배출했으면서도 왕자의 난으로 인해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신천(之淵), 곡산(庶), 재령(得龍), 강령(拯), 운남(千熙), 진주(汝揖), 충주(儞), 임실(理), 용인(汝中), 상원(鳳儀) 등 10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신천, 곡산, 재령만이 대본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다만 모든 강씨는 강지연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한다. 강지연은 옛 주나라 때 기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강후의 67세손이 강호경의 후손으로 문하시중을 거쳐 고려 고종 때 몽고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강화도로 호종하여 강화천도에 공을 세우고 호종공신에 녹훈되어 신성부원군에 봉해진 인물이며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으로 삼게 된 득관조이다.

강호경은 고려 태조의 외조(外祖)로서 고려건국에 많은 공을 세우고 국조대왕에 봉해진 인물이다. ‘강성호소록’에 따르면 3천년 전 기자가 동래할 때 무왕의 아우 강숙봉이 둘째 아들이 기자와 함께 평양에 들어와 백성의 교화에 공을 세워 강자로 사성하고 관정대훈공신에 봉해짐으로써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씨의 ‘기미보’는 시조를 강호경으로 하면서 강지연을 중시조로 하고 있으나 강후의 돌래설을 전제로 하는 계통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태조의 국구인 강윤성은 상산부원군이며 그 딸이 신덕왕후인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기록이다.

▲享祀(향사):中祖(관악산 설단) 매년 10월 3일 세향

▲전북지방은 매년 3월 3일 전주시 기린봉 아래 있는 제각에서 지냄

▲人口(인구):서울 12,420명, 경기 6,222명, 강원 1,627명, 충북 999명, 충남 5,438명, 대구 1641명, 경북 2,631명, 경남 1,494명, 부산 2,565명, 전북 3,868명, 전남 900명, 제주 10,907명, 계 50,712명.

⑦晋州 彊氏(진주강씨)

▲始祖 彊善岳(시조 강선악)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으로 경상남도 통영군 광도면 우동리에 강선악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이 나타났는데 그 당시 인구는 16명이었다. 그러나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것을 보면 총 427가구에 인구 1826명으로 나타나 있고 후손들이 전국에 흩어져 거주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진주강씨의 유래에 대하여는 그 세계가 자세하지 않으며 다만 강선악이 호적상 관향을 진주로 하고 있어 진주강씨로 하고 있다.

▲人口:서울 584명, 경기397명, 강원92명, 충북 45명, 충남 119명, 대구122명, 경북 123명, 경남 65명, 부산 122명, 전북 59명, 전남 103명, 제주 9명, 계 1,840명.

⑧忠州 强氏(충주 강씨)

▲始祖 强浚明(시조 강준명)

충주는 고구려때 국원성 신라때는 중원경이었다. 여기에는 강(强), 김(金), 동(童), 양(梁), 지(池), 어(魚) 씨 등이 세거했다고 한다.

강씨는 중국 진나라때의 대부 강일의 후예로 송나라 휘종때 강준과 이종때 강신 등이 전해오고 있으나 우리나라 동래설은 알길이 없으며 신라 무열왕과 문무왕때 강수가 나타나 있으나 그의 세계는 알 길이 없다.

강준명을 1세조로 삼아 그의 후손들이 충주와 괴산 등지에 귀화하여 정착하면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충주, 괴산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50여 가구가 살고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 센서스에서는 224가구 901명이 서울, 충북, 경기를 비롯하여 남한 각지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인구: 서울 189, 경기 131, 강원 42, 충북 127, 충남 68, 대구 60, 경북 47, 경남 52, 부산 56, 전북 31, 전남 27, 제주 10 계 840.

⑨忠州 剛氏(충주 강씨)

▲始祖 剛良(시조 강량)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청나라 공부상서를 역임한 강량은 청나라 덕종때 사람 강의자의 아들이며 만주인이라고 한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 강응용이 살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11명이 그리고 1985년 인구 센서스에서는 87명이 분산 세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80년 호적에 기재할 때 공무원이 강씨(疆氏)를 강씨(剛氏)로 오기한 것이 밝혀져 결국 강씨(剛氏)는 강씨(疆氏)로부터 분적된 것이라고 한다.

⑩驪州 介氏(여주 개씨)

▲始祖 未詳(시조 미상)

여주는 고구려때 골내근현으로 주요 성씨 개(介), 박(朴), 김(金) 씨 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개씨는 여주를 관향으로 세거해온 진성이다. 여주 개씨는 중국 태평에 세거해온 중국 성씨로서 언제 우리나라에 동래했는지는 상고할 길이 없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함북 종성군 행영면 행영리에 개연순, 개관오, 개영준 등 3가구가 살고 있는 것이 처음 나타났는데 그들은 본래 경기도 여주에서 세거하다가 9대조때 함경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호적에 본관을 여주로 등재하였다. 1985년 인구센서스에서는 총 가구수 51가구 인구 165명(서울 33, 경기 39, 강원 8, 충북 3, 충남 9, 대구 57, 경북 3, 경남 33, 부산 14, 전북 3, 전남 8, 제주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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