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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icon 친일파
icon 2019-09-03 11:36:31  |   icon 조회: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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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 관례를 보더라도 한미관계는 미일관계에 비교가 안 된다. 정세현 전 장관은 이를 두고 “격이 다르다, 같은 동맹이라도 갑을병이 있다, 우리는 A급은 못 된다”라며 미국과 일본의 친밀관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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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14일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을 만난 자리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혀 악수를 나누었다. 미국의 국익과 자신의 對日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한 실리적 제스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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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에 서방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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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국 일본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일본은 195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연 10퍼센트 정도씩 성장해, 이미 1968년에 서방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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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유럽과 미국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국이 안보를 책임져 준 덕분에, 일본은 군비 지출을 GDP의 1퍼센트 정도로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산업(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 방벽’으로 키우려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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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Japan as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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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보겔 씨는 1967년부터 하버드 대학 교수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의 역동적인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여 지대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특히 고도 경제 성장기의 일본(1960-1980년대)과 급속하게 대두한 중국(1980-2000년대)에 대한 깊은 통찰과 치밀한 실증 연구는 현저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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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첫 대표적인 저작 ‘Japan as NO.1’(1979년)에서 단순한 일본 칭찬이 아니라 부족한 천연자원으로 공업화를 추진해 온 일본이 탈 공업화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현명하게 처리해 왔다고 평가하고 미국이 배워야 할 모델 국가로서 일본을 소개했다. 구미 이외의 국가를 모델로 하는 이 책의 주장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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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에즈라 보겔이 일본에서 2년을 보낸 뒤 '일등 국가 일본(Japan as Number One)'을 썼다. 뭐든지 '일등' 하면 무조건 미국이라는 신화에 금이 갈 때 나온 책이다. 욱일승천하며 미국 경제의 아성을 무너뜨린 일본 경제에 대한 감탄이 페이지마다 넘쳤다.



그때 보겔의 눈에 비친 일본은 '기적의 나라'였다. 애들은 공부를 잘하고 어른은 일을 잘했다. 고교 진학률 94%, 수학 성적 세계 2위,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미국 사람 두 배…. 반면 인구 대비 강도 발생 건수는 미국의 100분의 1이 안 됐다. 정치는 안정되고 관료는 명석했다. 경영자는 유능하고 근로자는 근면했다. 국민 네 명 중 세 명이 '중류(中流)'라고 자부했다.



이런 놀라운 나라에서 생산해낸 신차(新車)가 미국 시장을 함락했다. 도요타 승용차가 뉴욕 교외를 메우고, 닛산 트럭이 오하이오 들길을 달렸다. 미국 자동차산업 메카인 디트로이트는 폐광처럼 쇠락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커버에 최신 일본 제철소와 녹슨 미국 제철소를 대비시킨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났다. 그 위에 찍힌 헤드라인이 '일본으로부터의 위협(The Danger from Japan)'이었다.


보겔은 "겁낼 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100년 동안 세세한 부분까지 서구를 배웠는데 서구는 왜 일본을 배우려 하지 않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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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세계 10대은행에 일 5개 차지

미지분석, 미영불 등은 퇴조세 뚜렷



[뉴욕 AP연합 특약] 미국의 한 금융잡지가 조사한 세계 10대은행랭킹에 일본은행이 5개나 들어 있어 세계금융계에서 일본자본의 위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고.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매거진지는 최근호에서 세계 10대은행 가운데는 일본은행이 5개 , 미불 은행이 각각 2개와 3개씩 랭크됐다고 발표.


이 잡지는 이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다른 나라의 경쟁은행들은 점차 퇴보하고 있는데 비해 일본은행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 , 국제금융시장의 거인 영불 은행들을 제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난해 일본 은행들은 개도국에서 은행을 인수하거나 신규지점설치, 사업영역확대 등으로 급신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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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6.28. 매일경제

* 2,3,5,6,7 위가 일본.






1990 일본 1인당 GNP 세계 3위

미국은 7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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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환율을 적용, IBRD에서 발표한 각국의 90년도 1인당 GNP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과 독일보다 뒤떨어진 세계랭킹 7위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로 볼 때 스위스가 3만2천6백80달러로 가장 소득이 높고 일본이 2만5천4백30달러로 랭킹3위, 독일이 2만2천3백20달러로 6위를 각각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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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합니다. 무역흑자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약 3240조 원의 대외채권을 가진 세계 1위 채권국 지위를 30년간 유지하고 있죠.

일본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2018년 기준 236%)이 세계 최고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채 90% 정도를 일본 국민·기업·금융기관 등이 가지고 있어서 대외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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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특파원] 한국 경제 걱정하는 일본



조선일보 이하원 도쿄 특파원

2018.09.04



지난달 30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브리핑은 일본의 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한 달 전에 참가 신청을 했었다. 5년 주기로 일본 사회 변화를 조사하는 이 연구소가 전국 1만9800가구와 개인 1만369명에게 답변지를 받아 분석한 결과가 발표됐다.


이날 눈길을 끈 대목은 두 가지. 하나는 '생활수준이 향상됐다는 가구가 증가했다'고, 다른 하나는 '식량·의복 문제로 인한 곤궁, 공공요금 미지불, 채무 체납 가구 비율이 줄었다'였다. 요컨대 최근 5년 새 먹고살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가 다룬 대상 기간은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아베노믹스 성적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식 브리핑이 끝나고 이 기관의 연구책임자와 명함을 교환하며 물었다.


"일본 생활수준의 변화에 대해 아베 내각의 경제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그러자 이에 대한 답변 대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 마치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일본 경제 동태(動態)가 아니라 한국 경제 아니냐는 뜻으로 들렸다. 사석(私席)에서 일본인과 아베노믹스에 대해 얘기 나누다가 십중팔구 한국 경제 얘기로 귀결되는 요즘 대화 패턴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일본의 최근 경제 상황은 이웃 나라를 걱정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얼마 전 일본 내각부가 일본 성인 5969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74.7%가 '현재 생활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다. 일본인 4명 중 3명이 '매일의 일상이 즐겁다'고 반응한 것이다. 이 비율은 이 조사가 시작된 1963년 이후 5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일본 기업 분위기도 최고 수준이다. 경제는 그야말로 활황(活?)이다. 도요타자동차, 파나소닉을 비롯한 기업들은 앞다퉈 연구개발(R&D) 투자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연구개발비는 약 12조엔(약 125조원)으로 전년 대비 4.5% 늘었다. 9년 연속 증가다. 일본 기업들이 R&D에만 대한민국 내년 총예산(470조원)의 4분의 1 가량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올해 2분기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지난해에 비해 12.8% 증가했다는 뉴스도 3일 나온 것을 보면 일본 경제의 탄탄한 순항세가 당분간 더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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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34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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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력이 강하고 빈곤층이 적다. 일본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해결할 능력이 있다. 단일국이다. (대지진에 나타났듯) 놀라운 단결력과 유대감을 갖고 있다. 한국도 그렇게 못 한다. 일본에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강한 비공식적 사회 통제가 존재하는 고도의 응집 사회다. 경제가 크고, 교육 수준이 높고, 정부를 따르는 국민이 있는 나라가 왜 쇠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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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 전쟁이 나면 국가 위해 싸우겠느냐 ........

...... 싸우겠다는 응답자가 한국 10,2% 중국 14.4% 일본 4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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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친북의식화교육을 한 결과 2002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6.25를 한국의 북침이라고 답한 사람은 31% 였다. 2004년 9월 조사에서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이 39%로 북한이 33% 였다. 2004년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이 주적이라는 응답이 육사 입시생 34% 논산훈련소 입소생 75%였다. 2005년 16~25세를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에서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2006년 한중일 중고 2학년생과 대학생 등 2939명 의식 조사결과 전쟁이 나면 국가 위해 싸우겠느냐는 질문에 싸우겠다는 응답자가 한국 10,2% 중국 14.4% 일본 41.1%로 나타났다. 자기 나라에 전쟁이 나면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출국하겠다는 응답자가 한국 10.4% 중국 2.3% 일본 1.7%로 나타났다. 2009년 설문조사에서는 전쟁나면 외국으로 피신하겠다는 응답자가 무려 33%가 나왔다.



2007년 국방부가 실시한 입대장병 면접 의식조사 결과 “우리 주적은 미국” “북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다” “북의 남침 가능성이 없으니 남한 군대는 필요 없다”와 같은 대답들이 나왔다. 한 의식조사위원은 “입대 장병 80% 정도가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했다.


2008년 9월 공군사관학교 4학년생도가 “''F-15K는 살인기계인데 이것을 사용할 군인인 것이 괴롭다”며 반군·좌익 성향을 드러내 퇴교 되었다.


2008년에는 여간첩 원정화가 군부대 안보강연을 52회나 하고 돌아다녔다. 영관급 정훈장교들은 그녀에게 포섭돼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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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8

北 연평도 포격도발이 전교조 친북교육 박살냈다

written by. 이계성






2005.8.


신세대 66% "미국·북한 전쟁시 북 편들 것"

‘북한 좋다’도 63%... <조선> 설문조사 결과



이승훈(youngleft) 기자



우리 나라 신세대들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신세대 민족주의에 관한 조사에서 ‘미국과 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는 질문에 ‘북한편에 서야 한다’고 답한 신세대가 65.9%에 달했다.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대답은 28.1%, 모름·무응답은 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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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도 신세대는 ‘좋다’ 62.9%, ‘싫다’ 33.7%였고 ‘모름·무응답’은 3.4%였다. 기성세대는 ‘좋다’가 16%에 불과했지만 '싫다’가 55%나 돼 대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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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4506






[사설] 육사생도들까지 오염시킨 좌파 선전선동



조선일보

2008.04.04



김충배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2004년 1월 육사에 합격한 가(假)입교생 2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고 숨이 막혔다고 한다.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냐'는 질문에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답한 것이다. "북한"이라고 답한 육사생도는 33%였다고 한다. 육사는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곳이고, 이들은 졸업과 함께 대부분이 휴전선을 지키는 군부대의 소대장으로 복무하게 된다.


같은 해 국방부가 실시한 입대장병 의식조사 결과 75%가 반미 감정을 드러냈고 공산주의에 비해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답한 장병은 36%에 불과했다고 한다. 숨이 막히는 게 아니라 나라가 망할 조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엔 반미(反美)하고 친북(親北)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반미와 친북의 불을 지른 것은 지난 10년 간의 두 정권이었다. 금성출판사가 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보고 그 좌파 성향에 놀란 김 교장이 자체적으로 대안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군에 배포하지 못하게 막은 게 다른 사람 아닌 국방장관이었다.



공영 TV들은 경쟁적으로 여기에 풀무질을 해댔고, 전교조는 어린 학생들을 그 불더미 속으로 밀어 넣어 건강한 상식을 태워버렸다. 2004년의 육사 신입 생도들은 주로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중동의 산업 역군과 같은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에 대해선 학교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2002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6·25를 북한의 남침이라고 답한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2004년 9월 조사에서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39%)이라고 한 사람이 북한(33%)이란 응답보다 더 많았다. 김 교장을 놀라게 한 육사생도들은 그해 입교한 학생들이다. 그나마 육사를 지망한 학생들이었기에 그 정도였지 일반 대학 신입생은 상황이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2005년 16~25세를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에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대학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2006년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면접시험에서 "우리 주적은 미국" "북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다" "북의 남침 가능성이 없으니 남한 군대는 필요 없다"와 같은 대답들이 나왔다. 한 심사위원은 "응시생의 80% 정도가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권과 TV, 전교조가 국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들까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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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4/2008040401450.html






2007 노무현



[ ......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 ]



[ .....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 ]


[ .....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

..... 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 ]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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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 자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하시는데...영국의 토니 블레어의 말하자면 자문을 하는...그 양반 이름이 누구지..예, 기든스라는 사람의 책을 보니까 영국이 미국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좀 자주적으로 가라..그리고 유럽을 중시하라.. 이렇게 조언을 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영국도 보기에 따라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은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덜 자주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사실...객관적 사실입니다. 그것이 해방될 때.. 그리고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지금까지는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제로 자주란 말씀을 자주 하진 않으셨지마는 6.15 회담부터 자주적인 행보...일부입니다. 그 때...



김정일 :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라는 구호가 나오지 않았소?


대통령 : 그랬습니다. 그분 뭐 핵무기도 만들려고 하셨고...했는데...

김정일 : 자조...자조지요 뭐..자조..



대통령 : 근데 그것으로 말하자면 실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그래서 이제..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 용어 없애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균형외교라는 말을 우리 정부에서 와서 쓰고 있지 않습니까.. 공공연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 공식 균형외교라는 말을 쓰고 있죠...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 또 이런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후보 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 가 있냐.. 인계 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디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 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 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 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 달러가 들어도 100억 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냈지 않았습니까... 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 합의했지 않았습니까..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그렇게 없어지고.. 우리는 전쟁사실 자체를..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어제 엊그제 국군의 날 행사 때 우리 국군의.. 우리 안보 개념은 대북 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내다본 안보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일관되게 여러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했고..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뭐 내가 결의가 단호해서 그렇거나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남쪽의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로서 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가는 기운은 강력하게 굳혀 나가는 것..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 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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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 충분히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 드릴까요,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 마음으로 못 마땅하게 생가하고 저항감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가지고 개입하고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가지고 정치적 원력을 행사한다. 말하자면 미운나라에 대해서는 경제제재를 한다든지 미국의 국내법만 가지고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에는 과학기술의 일종인 기술적인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패권이라는 것은 시간이 좀 지나면 상호적인 관계로 변화를 형성하고?


군사적인 문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 아프리카라할지라도 타격이라든지 일시적인 침략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배는 불가능한 시대로 간다고 보기 때문에 과거 제국주의 시대 같은 그런 침략과 지배, 이것을 자위력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라크에서도 그런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고 경제·시장규제를 가지고 정치적원력을 행사하는 것도 과연 어느 시기까지 갈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20년, 변화를 내다보면서 곧 한계에 봉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그와 같은 경제권력을 행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일 것입니다.


물론 그러나 개별기업들이 아직까지 국내법을 가지고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황이 변해가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한민족이 슬기롭게 서로 단결하고 또 자주의 문제도 시간을 갖고 서서히 풀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남측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중에 미국이 상당숫자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니댜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을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남측에서는 이 변화라는 것도 10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로서 그런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의논을 드리고 싶고 그러한 전망을 가지고 풀어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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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적 저력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1557년에 포르투갈~고아~마카오~나가사키를 잇는 연(年) 1회의 정기 항로편이 생겼다.


1577년 나가사키로 가던 포르투갈선이 제주도 근해에서 선원들을 육지로 내려보내 식수(食水)를 구해오게 했다. 이 선원들은 상륙했다가 제주도 관헌에 붙들려 죽었다. 반면 1543년 가고시마 근해의 다네가시마에 표착한 포르투갈선은 조총(鳥銃)을 일본에 전했다. 일본은 전국(戰國)시대에 이 조총을 발전시켜 1592년 임진왜란 때 썼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한국에도 오고 일본에도 표착했으나, 우리는 그들을 죽여버리고 일본은 그들이 가져온 조총 제조 기술 등 선진문물을 수용해 더욱 발전시켰다. 일본 전국시대 때 조총 수는 유럽 전체보다 더 많고 우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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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년에 파이 중간자를 예측한 유카와 히데키가 1949년 노벨 물리학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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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 일본은 근대적 과학기술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다.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은 이미 느슨해져 있었고 특히 네덜란드 상인들의 무역이 허락되면서 서양 학문은 난학(蘭學)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1774년에 스기타 겐파쿠가 네덜란드의 해부학책을 《해체신서》라는 이름으로 번역했고, 히라가 겐나이가 마찰전기 발생장치를 만들어 1881년에 이것을 사용한 전기실험이 실시되었다. 히라가는 이 외에도 온도계를 만들고 광산 개발에도 참여했으며 1762년 일본 최초의 물산박람회를 실시했다. 시즈키 타다오가 1784년에 《구력론》을 번역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소개했고, 1793년에는 모토키 요시나카가 지동설을 소개한 《신제천지구용법기》를 번역했다. 또한 미우라 바이엔은 과학사상가로서 변증법을 주장했고, 저서로 《현어》를 남겼다.[7]


네덜란드 상관의 의사로 취직해 있던 독일인 의사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는 책으로만 과학을 접했던 일본 학자들에게 관찰과 실험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지볼트는 1823년에 일본에서 추방당했지만,[7]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타카노 쵸에이는 번역이 아닌 최초의 일본 생리학 서적 《서설의원추요》를 썼다.[8]



현대 과학사 (메이지 유신 ~ 현재)


즉, 1853년에 매슈 페리 제독이 도쿄 앞바다에 나타났을 때 일본은 이미 서양 과학기술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중화사상에 집착한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갈아타며 계속해서 서양의 과학기술을 익혔다. 1860년에 미국을 방문한 적도 있던 후쿠자와 유키치가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외국어 학원을 세웠다.[8]



1865년의 러시아 유학생, 1866년의 영국 유학생을 시작으로 조직적인 국비 유학이 이루어졌으며 1868년에 만들어진 개성학교는 1877년에 설립된 동경대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대학에 서양 학자들이 초빙되어 교육이 계속되고, 외국으로 유학 나간 일본 과학자들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1903년에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것과 같은 원자모형을 발표한 나가오카 한타로가 있다. 이것은 일본의 과학 수준이 20세기 초에 이미 유럽의 그것과 대등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38년에 파이 중간자를 예측한 유카와 히데키가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은 16차례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하여 명실상부 세계 과학의 주류로 진입했다.[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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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경제·과학 분야 노벨상 최다배출국은 美·英·日


아시아경제 | 박선미 | 2015.08.06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2000~2014년 경제·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 순위는 미국, 영국, 일본 순으로 드러났다.


세계 대학 평가 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는 6일 2000년 이후 경제, 의학, 물리, 화학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은 146명의 수상자를 출신국으로 분류한 결과 미국이 71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2위는 12명을 배출한 영국이 차지했다. 일본은 영국 보다 1명 많은 13명을 배출해 수적 우세였지만 공동수상의 경우가 많아 전체 순위에서는 3위로 밀렸다. 독일, 이스라엘, 프랑스, 러시아, 호주, 노르웨이, 벨기에가 4~10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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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노벨상 19명…일본 과학의 저력은?


[ 2014-10-10 ]



기대를 모았던 한국인 최초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이 무산됐는데, 이웃 일본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해 과학분야에서만 노벨상을 지금까지 19개나 받았습니다.

과학 분야 노벨상 강국의 저력이 무엇인지 도쿄에서 최명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기자]

일본은 올해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 등 3명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해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2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문학상 2명과 평화상 1명을 제외하면 19명이 물리학과 화학, 의학 등 과학 분야 수상자입니다.


[인터뷰:아베 신조, 일본 총리]

"세상에 빛을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아카사키 교수가 개발한 청색 LED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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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 ..... 학사 출신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그가 유일합니다. ........

.....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미즈 제작소를 다니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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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는 도호쿠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였고 시미즈 제작소라는 중견기업에 취직합니다. 이 회사는 연매출 2조원 정도로, 일본인들에게도 크게 알려진 기업은 아닙니다. 주로 측정기계 등을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20년 정도를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주 업무는 회사의 연구소에서 연구개발 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직책은 주임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진급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연구가 좋아서 일부러 진급을 고사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10월의 어느 날도 평소처럼 연구에 몰두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상하게도 영어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충 전화 속의 사람이 노벨 프라이즈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들었지만, 그게 자신이 아는 노벨상인지도 몰랐고, 자신이 노벨상을 받으리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습니다.

다나카 고이치 씨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아마도 스팸 전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장 회사에 있던 전화기들이 모두 울리기 시작했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다나카 고이치 씨를 찾는 전화였는데, 어떤 전화는 언론사였고, 정부기관의 전화도 있었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한결 같았습니다.

'다나카 고이치가 도대체 누구냐?'
'그 사람이 거기에 근무하는 직원인가?'


놀랍게도 다나카 고이치 씨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다나카 고이치 씨는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스타가 되었습니다. 일본 화학학계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나카 고이치?? 대체 어느 대학 교수지?"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 생리학상의 역대 수상자 700여명을 통틀어서 학사 출신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그가 유일합니다. 그리고 일반 회사에 다니는 민간 연구원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번째입니다.

불과 그의 나이 42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역대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이 중에서 역대 2번째의 최연소 기록입니다.
또한 도호쿠 대학 출신 중에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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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20명이나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사 출신이 노벨상을 받는 일은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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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말이죠.

왜냐하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고, 학창시절에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그는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며,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미즈 제작소를 다니고 있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다나카 씨 같은 분들이 노벨상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일본에서는 100년 넘게 한 우물만 파는 회사가 10만개 이상이 있습니다. 시미즈 제작소도 그런 회사입니다.
중소기업, 중견기업이지만, 한우물만 파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것입니다. 핵심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계속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다나카 씨가 회사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환경 덕분입니다.

다나카 씨가 연구를 성공하기 까지 200번의 실패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단 한가지 발견을 위해서, 그게 발견 될 지 안 될 지도 모르는 연구를 200번 실패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서는 힘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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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미국인이 8명으로 가장 많다. 두 번째가 일본으로 7명이다. 올해 수상자도 일본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였다. 그는 60년 넘는 기간 100개 이상의 건물을 설계하였다. 1966년 완공된 오이타 시립 공공도서관, 1986년 완공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1992년 만들어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등이 대표작이다.


일본의 목조 건축은 역사도 오래고 규모도 대단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은 8세기에 지은 나라(奈良)의 도다이지(東大寺), 최고(最古)는 7세기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호류지(法隆寺)이다. 지진과 전쟁이 많았던 나라이므로 튼튼한 건축은 생(生)과 사(死)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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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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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기적의 우승을 차지해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사가키타 고교는 대회 참가 4081개교 중에서 들러리 중의 들러리였다. 전용구장도, 선수용 기숙사도, 우수 선수 장학금도 없었다. 야구 특기생이 올 리가 없었다. 주전 선수 평균 키가 170㎝도 안 됐고, 감독은 대학 야구 선수도 해 본 적이 없는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출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기적을 일으킨 비법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것도 없었다. 연습의 절반은 달리기 등 기초 체력 다지기와 기초 동작 훈련이었다. 학교 시험 때는 1주일간 연습도 안 했다. 비결이 뭐냐는 쏟아지는 질문에 국어 선생님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시간을 잘 지킨다. 예의를 지킨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 인간으로서, 학생으로서, 운동선수로서 기본을 지키게 했다는 것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가키타 고교 같은 야구팀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감독은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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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18/2007091801108.html

[양상훈 칼럼] 사기 왕국 겉포장 대국
200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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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어떤 문제를 취재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싸워온 이들이 있다. 개인적 관심사인 일본 안보정책의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가면 ‘오키나와 텐트’가 헤노코 해안을 노려보고 있고, 일본에서 두번째로 ‘엑스밴드’ 레이더가 설치된 교토부 교탄고시에 가면 지금까지 500회 이상 기지의 변화를 사진으로 찍고 기록한 시민을 만날 수 있다. 지난 1일 요코스카에 갔더니 미국 제7함대의 변화를 27~28년 동안 관찰해온 지역 단체가 자신들이 애써 축적한 자료를 선뜻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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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南亞의 代父로 등장하는 일본



중국견제와 관련해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일본의 역할을 지지, 지원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궁금증의 단서는 2012년 12월 10일의 필리핀 외무장관 기자회견에서 찾을 수 있다.

“필리핀은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는 것에 찬성한다. 일본은 동북아시아 질서를 무시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보도됐지만, 기자회견 내용을 들었을 때 필자는 두 가지 점에 주목했다. ‘외무장관’이 직접 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부활을 지지했다는 점과, 발언 시기가 일본 총선인 12월 16일의 ‘6일 전’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외무장관 입을 빌려 옆 나라, 그것도 한때 자신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나라의 무장(武裝)을 지지 발언할 수 있을까? 총선 직전에, 일본의 특정 당에 유리해질 수 있는 발언을 정부 최고위급이 하는 것도 상식 밖이다. 필리핀이 황당하고 정신 없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악연(惡緣)도 있지만 미국과 가장 가깝고 미국의 의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필리핀 외무장관의 발언은 직·간접으로 미국과의 교감을 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012년 5월 남중국 바다 주변 영토 문제로 중국과 전쟁 직전까지 갔던 필리핀은 ‘중국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좋다’는 입장이다.


필리핀과 같은 입장에 처한 주변 국가로는 민주화한 미얀마, 베트남, 인도 등이 있다. 센카쿠 분쟁은 동남아권이 일본을 대부(代父)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낳았다.


2012년 11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일본 정부가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기수출과 군사지원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캄보디아와 동티모르에 200만 달러를 보내 현지 공병단(工兵團) 훈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적은 액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목적으로 일본이 외국을 지원한 첫 번째 케이스이다. 또 일본은 필리핀 해양경비를 위해 1200만 달러의 군사용 장비를 판매하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도 비슷한 장비의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베트남에는 일본제 디젤 잠수함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제 디젤 잠수함은 성능 면에서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빠르고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자국의 바다를 방위하기 위해 일제 잠수함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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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본은 자국의 무기를 직접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 합작을 해서, 부품을 보내 미제(美製)로 재포장한 뒤 외국에 수출한다. 직접 나서서 하는 것보다 미국에 제공해서 2인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일본 독자의 기술력을 통해 대륙간탄도탄을 1m 오차범위 내로 명중시킬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 일본의 독자적 무기수출을 용인하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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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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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초정밀 레이더 기술로 인해 미국의 대륙간 탄도탄의 오차가 1m 내로 줄어들었다’는 말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의 초정밀 최첨단 분야의 기술은 일본이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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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원연의 재처리 공장이 가동되면 연간 최대 8t의 플루토늄이 발생 ........


...... 일본은 이미 영국, 프랑스 등에 재처리를 위탁해 생긴 약 44t의 플루토늄을 국내외에 보유 ..... 5천 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 ....... ]



일본 핵 재처리 공장 4곳, 10월 완공


연합뉴스, 2014/01/07



(도쿄=연합뉴스) 김용수 특파원 = 일본원연(原燃)주식회사는 원전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공장 본격조업에 앞서 아오모리(靑森)현 롯카쇼무라(六ヶ所村)에 건설 중인 핵 재처리 공장 등 4개 시설에 대한 안전심사를 7일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신청했다.


일본원연은 지진 대비책 등을 대폭 강화한 새 안전규제 기준이 적용되는 이번 심사에 합격하면 롯카쇼무라의 핵 재처리 공장(건설비 약 22조 원)을 올 10월 완공한 다음 조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안전심사 신청 시설은 재처리 공장 외에 우라늄 농축 공장, 플루토늄·우라늄 혼합산화물(MOX) 공장,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관리 센터 등 4개다.


일본원연은 전력회사 등의 출자로 설립된 국책 회사로 우라늄 농축,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원전 폐기물 매설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일본원연의 재처리 공장이 가동되면 연간 최대 8t의 플루토늄이 발생하게 돼 안 그래도 넘쳐나는 플루토늄 잉여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언론들은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영국, 프랑스 등에 재처리를 위탁해 생긴 약 44t의 플루토늄을 국내외에 보유하고 있다. 이 플루토늄은 5천 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中, 日 핵무장 징조 분명…핵무기 생산능력 미국과 맞먹는다



조선닷컴

2014.01.02



중국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일본의 핵무기 생산능력이 미국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解放軍報)는 1일 ‘2013년 세계 핵무기 형세 분석’기사를 통해 “일본의 핵무장 징조가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신문은 지난해 세계 핵무기 동향의 주요 특징으로 ▶미국·러시아 등 핵 대국들의 우세가 지속되고 있고, ▶핵 대국들의 실전능력이 강화됐으며 ▶일본의 핵무기 발전 징조가 보다 분명해졌고, ▶북한 등 핵무기 보유 문턱이 있는 국가들이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4가지를 꼽았다.


해방군보는 “전문가들은 핵 시설과 기술, 재료 면에서 볼 때 일본은 언제든 핵무기를 보유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일본의 6개 핵연료재처리시설은 매년 9t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핵무기 2000를 만들 수 있는 양으로 생산능력으로 따지면 미국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치”라고 분석했다.


해방군보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일본은 이미 50만∼100만t급의 핵폭발 장치 2∼5기를 비밀리에 생산했거나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수량에서뿐 아니라 위력 면에서 북한, 이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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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 ......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90일 내 핵무기를 제조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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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 겸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62)는 한국에 대한 독설로 ‘악명(惡名)’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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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핵 엔지니어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의 히타치(日立)에서 9년간 고속 증식 원자로 설계를 담당했다. 그래서 묻는 말인데 북한의 핵 보유가 명백해지면 일본도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는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90일 내 핵무기를 제조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모든 실험 과정을 30~40년 전에 다 끝냈다. 일본은 50t 이상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다. 핵폭탄 2,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 정서 때문이다. 약 90%의 일본인이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핵무기의 유일한 희생자였던 일본인들은 지금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의 비극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의 직접적인 위협이 현실화하는 상황이 되면 여론이 핵무장 쪽으로 확 돌아설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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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착각하지 말라, 한국은 아직 멀었다






2006


[ ...... 결심하면 1주일 이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 ]




“日 핵무기 제조능력 이미 30년 전 완료”


2006-09-18


日 신국방족이 헌법개정으로 꿈꾸는 보통국가는 핵무장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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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계 보수세력으로 대변되는 아소다로 외상은 월간춘추 최신호를 통해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도 핵무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시하라 지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일본에 위협이 된다면 우리로서는 충분히 보복할 국가로서의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산케이 신문에 기고했다. 이들은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로 부활을 꿈꾸는 보수세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일본 정계를 장악하고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지금 북한의 핵 위협을 구실 삼아 단계별로 차근차근 군사대국화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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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핵무장 능력 어디까지 왔나


일본은 비핵무기보유국 중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우라늄 농축시설과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지난해 9월 6일 일본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이 의회 원자력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이 보유한 재처리된 플루토늄의 양은 자국내 5.7t, 영국과 프랑스에 위탁된 37.4t을 포함해 총 43.1t에 달한다. 핵탄두 1기를 제조하는 데에는 대략 우라늄 235.25kg, 플루토늄 239.8.kg 정도가 소모된다.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 양이면 핵무기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다.


2007년부터는 아오모리현에 있는 로카쇼무라 플루토늄 재처리공장이 가동된다. 일본의 핵무장은 현재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장애가 없는 상태다. 북핵 해결이 지연되고 미국이 눈감아 주는 상황이라면 정치적 의지로 밀어붙일 경우 시간문제이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몇 년 전부터 "원자폭탄을 갖는 것은 헌법상 문제가 없다. 일본도 핵무장을 해야 하며 결심하면 1주일 이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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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따지면 일본이 핵무장을 추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인 1941년에 이미 핵개발을 시도했다. 당시 일본 군부로부터 우라늄탄 개발 지시를 받아 구성된 일본 물리화학연구소의 나시나 요시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1943년 5월 전범 도조 수장에게 원자탄 개발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전쟁에서 패망한 뒤에도 핵야망을 버리지 않았던 일본은 1970년 후쿠다 내각이 “일본의 핵무기 보유는 합헌”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지난 2002년 4월 일본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 당수는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에는 플루토늄 3~4천 발분의 제조 원료가 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지난해 4월 오마에 겐이치 핵공학박사는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90일 이내 핵무기를 제조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모든 실험과정은 30~40년 전에 다 끝냈다”며 “일본은 50t 이상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으며 이는 핵폭탄 2000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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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발사에 성공한 일본의 정찰 위성 H2-A 10호기는 북한의 대포동미사일과 성능 면에서 비교도 안 될 최신예 장거리 미사일이나 다름없다. 1990년대 초반 발사된 H2-A로켓 1호기는 28분 만에 9500km를 과시했다. 지금은 한반도를 감시할 정찰위성으로 발사됐지만 일본의 핵무장이 완료되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대체된다 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운반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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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려면 수직형발사대(VLS) 또는 어뢰 발사식이 있는데 이중 VLS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3500t 이상의 잠수함이 필요하다. 일본은 현재 16척의 잠수함 중 8척이 3600t 오야시마급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7년 주기로 신형 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처럼 핵무장을 염두에 둔 일본의 행보는 제반여건을 사전에 마련해 두고 있어 그 가능성이 매우 현실적이다.



북한 핵실험은 일본 핵무장론의 기폭제



미국의 싱크탱크 ‘국립아시아연구국(NBR)'은 최근 북한의 안보정책을 다룬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서방과 중국 사이에 긴장을 조성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야기하는 것을 물론 동북아에서 무기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몰고 올 파장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꼽았다.



북핵은 실제 일본 우익세력이 자국민들 대상으로 군사대국화의 당위성과 군국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빌미로 활용되고 있다. 역으로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중국의 군사 팽창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이 겉으로 북핵 위협을 인질삼아 핵무장론을 내세우고 있는 저변에는 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분쟁, 러시아의 귀속된 북방 4개 도서, 독도영유권 주장에 따른 외교 갈등을 정면 돌파하는데 제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것이 핵무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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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60918201121843994







곤고구미


위키백과



곤고구미(일본어: 金剛組, 영어: Kongo Gumi Co.,Ltd.)는 일본의 건설회사이다. 578년에 창업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사찰과 신사, 불각 건축의 설계 및 시공, 성곽 및 문화재 건축물의 복원과 수리 등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이다. 매상 감소와 자금 유통 악화로 한 때 경영 위기에 휘말렸으나 경영 지원을 위해 다카마쓰(高松) 건설이 설립(2005년 11월)한 같은 이름의 인수회사(이하, 신 곤고구미)에 사찰과 신사 건설 사업 부문을 양도하고 종업원 대부분도 신 곤고구미로 보내어 다카마쓰 건설 산하로 들어갔다. 현재 상시 인원 약110여 명의 건축 장인들에 의해 전통과 명맥을 이어오면서, 전통적 공법에 현대적 공법을 결부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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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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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에서 일본의 소재·부품산업 경쟁력은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2018년 기준으로 소재·부품 관련 상품群에서 일본과 한국의 수출금액을 몇 가지 비교해 보면 반도체부품 관련 수출규모는 일본이 한국의 약 2.9배, 기계부품은 3.5배, 전자공업용 화학물질은 3배, 정밀공작기계는 7.7배나 더 크다.



이 같은 차이는 단순히 정부의 정책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일본에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즐비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일본 장수기업의 평균 존속기간은 197.8년이라고 한다. 일본의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 수상자만 해도 20여 명을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의 최고령 기업의 존속연수는 120여 년이고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아직 없다. 이 차이가 지금의 한일 간의 격차를 만든 것이다. 단기간의 정책드라이브로 해소될 수 있는 격차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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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왜 소재에 강한가.


"일본의 소재 산업은 한 지역의 역사적 특성과 장인 정신(모노즈쿠리·もの造り)에 기반한 일종의 ‘문화’라고 보면 된다. 일본 니가타 현에 위치한 스와다(SUWADA)는 전통적으로 열 처리를 아주 잘 한다. 스와다가 만드는 손톱깎이는 섬세한 절삭력으로 개당 수십만원에 팔려간다. 이 기술은 훗날 수술용 마이크로나이프 제조로 이어졌다. 올림푸스의 내시경에 쓰이는 아주 작은 수술 칼날은 바로 스와다가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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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국산화 외친 여권에 "日기술 잡으려면 반세기 걸린다"



[중앙일보] 2019.07.31

김경희 기자



.“일본의 첨단 기술을 따라가려면 반세기가 걸린다. 단기간에 국산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원천 기술을 구매해 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ㆍ관ㆍ정 협의회에서 뼈있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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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칸포스트는 일본 카메라에 대한 보이콧이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슈칸포스트는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보이콧이 불가능한 것이 일본제 카메라”라며 “2017년에 삼성이 카메라사업에서 철수한 후, 한국에는 카메라 메이커가 없어졌다. 캐논, 니콘, 올림푸스 등 일본 메이커의 한국 국내 점유율은 실로 70%를 넘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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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열망은 고도의 생산성을 창설하고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제품을 ........


......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일본을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 ]



리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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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인들은 실제로 칭찬할 만한 기질을 갖고 있다. 내가 1970년대 후반 시고쿠의 한 도시인 다카마스를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일에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 일이 있다.


일본 대사가 대접한 만찬에는 별 세 개짜리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훌륭한 요리가 나왔다. 과일과 디저트를 들 때 얼룩 하나 없는 조리복을 입은 30대 요리사가 잘 드는 칼로 감과 배의 껍질을 깎아 주었다. 그것은 마치 대가(大家)의 공연과도 같았다. 나는 그의 훈련과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접시를 닦고, 감자를 깎고, 야채를 자르는 주방 보조로 시작해서 5년이 지난 후에야 보조 요리사가 되었다고 했다. 10년 후 그 호텔의 주방장이 된 그는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요리사이건, 웨이터건, 객실 담장자이건,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열망은 고도의 생산성을 창설하고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 냈다.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일본을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중국, 한국,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일본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그들은 개인 개인이 레고(Lego)벽돌처럼 딱딱 맞춰지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둑이나 장기처럼 일대 일로 겨루는 게임이라면 중국인들은 일본인을 이길 수 있다.그러나 단체로, 특히 한 공장의 생산 팀을 짜서 겨룬다면 이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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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엔 라멘집, 미슐랭★ 따다



2019-09-03 11:36:31
211.169.1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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