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는 용서의 근거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이 출발 할 수 있는 계기와 힘이 된다. 중세에 나폴리 총독이었던 오나스가 감옥을 순시하면서 죄수들에게 수감된 사연을 물었다. 그랬더니 거의 모든 죄수들은 죄도 없이 억울하게 갇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은 흐느껴 울면서 “저는 죄인이다. 너무 배가 고파 상점에서 빵을 훔쳤다.” 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오나스 총독은 간수를 불러 그 사람을 내보내도록 명하였다. 총독은 왜 이 사람을 석방하였을까요. 죄질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자신을 성찰하며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고 개과천선하여 자신의 참 모습을 찾도록 노력하는데서 올바른 삶의 모습과 인생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진(晋)나라 양흠지방에 주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주처의 아버지는 주처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처는 하루 종일 방탕한 생활을 하며 남들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주처를 싫어했으며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주처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주처가 마을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하여 모두 걱정없이 잘 사는데 왜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십니까?” 이에 “마을에 끼치는 세가지 해로움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어찌 태평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마을 사람이 말했다. “세가지 해로움이 이라니요?” “삼산에 있는 사나운 호랑이, 장교(張橋)아래에 있는 교룡(蛟龍), 그리고 자넬세.” 이 말을 듣고 주처는 새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세가지 해로움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남산에 올라가 사나운 호랑이를 잡아 죽이고 장교아래의 물에 뛰어들어 용과 싸움을 벌인 끝에 겨우 목숨만은 건져 마을로 왔으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아직 자기를 미워하고 있음을 깨닫고 주처는 마을을 떠나 대학자 육기(陸機),육운(陸雲)을 만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들은 주처의 말을 듣고 굳은 의지를 갖고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더욱 새사람이 되라고 격려했다. 이 때 부터 주처는 10여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바로 개과천선으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 사례이다. 사람들을 해치는 호랑이와 교룡에 견주지 안했기 때문에 그를 믿지 안했으니 참 불행한 사람이었다. 각자 자신도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자신이 사람들이 회피하는 그런 위치에 있다면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새사람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이 애를 써도 사람들이 쉽게 진심을 이해하지 못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노력과 세월의 흐름은 그 벽을 넘을 수 있다. 사례하나를 더 소개한다면 너무도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옷은 다 헐어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고 주린 배는 등가죽에 착 달라붙었다.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남의 목장에 숨어 들어가 양을 훔쳐다 파는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둑질로 주린 배를 채우는 것도 잠시였다. 양들이 자꾸 없어지는 것을 안 주민들의 경제가 심해져 결국 그는 붙잡히고 말았다. “요 녀석 사지가 멀쩡한 놈이 왜 도둑질을 하는 거야.” “용서해 주세요. 배가고파서.....” 배가 고팠다는 말이 도둑질을 변호해 줄 수는 없었다. 결국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달군 쇠로 ST라는 글자를 이마에 새기게 되었다. ST는 Sheep Thief라는 글의 약자로 양 도둑이란 뜻이다. 얼마 지나 아픔은 가셨지만 ST라는 글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부끄러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절망을 딛고 이렇게 결심했다. “내가 다시 이 마을 사람에게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올바르게 사는 길밖엔 없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서 ST라는 글자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겠어.” 소년은 열심히 일했다. 마을의 궂은 일은 도맡아 했으며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내 놓았고 사람들을 위해 사랑과 정성을 다 하였다. 소년이 양 도독이었다는 기억은 마을 사람의 뇌리에서 차츰 지워져 갔다 마침내 소년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마을 사람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칭송했으며 싫다는 그에게 시장 자리를 떠 맡겼다. 시장으로 취임하는 날 어느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 손을 잡고 식장에 나왔다가 소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시장님이 이마에 쓰여 진 ST라는 글자는 무슨 뜻이예요?” 아빠는 난처했다. 그도 옛날에 소년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데 한 몫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얘야, 저분의 이마에 찍힌 ST라는 글자는 성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저분은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성자란다.” 이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다. “성자 시장님 만세! 사랑의 시장님 만세!”
사랑과 정성은 사회와 자신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결점과 쓰라린 상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결점과 아픔을 딛고 자신을 사랑의 화신으로 불사를 때 그 결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나간 잘못 때문에 마음을 괴롭히지 말고 땅에 쏟아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을 마음속에 새겨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반성과 성찰은 약이 되고 원망은 병이 된다. 자신의 잘못을 회사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부터 반성하며 자신을 바로 세우고 열심히 살면 그것이 바로 자신을 가장 잘 위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로 세우는 삶을 위해 힘을 내자.
성찰(省察)은 약이요 원망은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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