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최일중(성균관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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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최일중(성균관 전인)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6.10.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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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란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났다. 뭐가 그리 바쁜지 세월은 어김없이 올해도 제 갈길을 서두르고 있다. 생활이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계절의 변화도 잃어버린 채 감각과 감정을 허술하게 방치해놓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음의 준비랄 것도 없지만 깊어가는 가을의 한자락에서 나마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한번쯤 자기감정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도 기초가 있듯 우리 사람들의 감정도 기초를 세워두는 것이 좋겠다. 계절이 바뀌면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자기 닥쳐버린 일들을 감상하기엔 벅차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쉽게 비우고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자신의 감정변화에 대비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꽃은 지고 계절은 바뀌어도 여전히 꽃은 피고 계절은 돌아온다. 생명은 늘 존재하고 우린 살아있다는 걸 기억한다. 계절을 대표하는 여름 생물 가운데 하나인 개구리는 장마가 오는 것을 걱정한다. 반대로 매미는 장마가 가는게 아쉬워한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우리의 감정만큼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표현들이 되살아나는가 말이다. 그런데 우린 이 아름다울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감정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우리가 물질문명에 너무 길들어졌고 주변에 의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고향집 시골마을 어디에도 있을 법한 큰 느티나무에서 우는 매미 울음소리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이들의 자장가요 오케스트라다. 그 뉘라서 이 자연이 주는 청량함을 마다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주제삼아 자신의 문제도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들 들어 가을을 생각해보면서 이렇게라도 가을을 그려보면 어떻겠는가? 가을의 기도, 가을꽃, 가을의 농촌, 가을의 우리집, 가을에 생각나는 내친구들, 가을하늘, 가을 밤과 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가을에 내 자신, 나는 일년중 가을을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다.
색깔 변해가는 잔디밭에 누워 파란 하늘과 솜구름 바라보면 천지가 내 것인 양 착각한다. 가을이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아름다움이 있다. 가을이 한참 무르익어가는 어느 해 가을 집 근처 공원에 단풍나무가 많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산책로를 걸어가다 무심히 놀라운 일을 보게 되었다. 그때 본 어느 어린 아이의 모습이 나를 매년 가을의 계절로 끌어놓는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가을의 환상이요, 잊을 수 없는 멋진 기억으로 남는 추억이다.
대여섯 살이나 먹었을까 하는 꼬마는 단풍나무 밑에서 단풍잎을 열심히 줍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꼬마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낙엽을 질끈 밟아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멍청히 한참을 내려다 보다가 웬지 그 꼬마가 부러워 아직 완전히 빨갛게 물들지 않은 단풍잎 몇 잎을 주워모아 뒤돌아섰다. 그때 그 짜릿한 기쁨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였다. 난 그 때 이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 아래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가을아이를 보았던 것이다. 어린 꼬마가 무엇을 알고 그렇게 행동했을 것도 아닌데 너무도 무심히 행동했던 꼬마의 단풍줍기는 이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자신의 감정표현이었다고 생각되어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나 자신도 그때 그 꼬마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책갈피에 예쁜 단풍잎이 끼워져 있을까 한번 의심을 해본다.
기쁘든지, 슬프든지 내 감각과 감정은 항상 무방비 상태에 놓여져 있어 한번씩 외부의 충동을 받고서야 가끔 가득 그리움과 추억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번 가을에도 그때 그곳에 내자신에게 웬지 잊혀지지 않는 가을아이의 기억을 되새겨 보련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감상에 젖어보고 싶고 그리고 어디로 떠나고도 싶은 이 가을에 그저 마음속에 담아두지만 말고 한 번쯤 가을아이가 되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뭇사람들 가슴에 묻히지 않아도 내 가슴속에 영원히 묻어두어도 좋을 그런 가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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